시진핑 시대, 시장화·법치화 개혁의 물결 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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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롄 중국사회과학원 교수가 17일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김수길 본사 주필과 만나 중국 시장경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스터 마켓(Mr. Market)’. 중국 경제학자 우징롄(吳敬璉·82) 국무원발전연구센터 연구원 겸 중국사회과학원 교수의 별명이다. 그는 사회주의 중국에 시장을 이식시킨 주인공이다. 개혁개방 정책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1982년, ‘사회주의 경제의 계획 속성과 상품경제 속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시장경제의 밑그림을 펼쳐 보였다. 국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부패와 빈부격차를 키우고 있으므로 “국가는 빠지고 민영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國退民進)”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중국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 17일 KOTRA가 주관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한·중 동반성장 고위 포럼’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중국 경제의 성장 전망부터 말씀을 듣고 싶다.

 “중국은 지금 성장의 속도가 아니라 성장의 ‘질(quality)’을 말할 때다. 고속 성장은 한국·일본·태국 모두 경험했다. 그러나 다들 경제위기를 겪었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년 10%를 넘나드는 고속 성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성장의 ‘질’이 중요하다. 정부 주도의 투입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의 효율에 따른 성장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속도는 늦추더라도 효율을 높여야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성장률이 너무 급하게 떨어지지 않을까 시장이 걱정하는 것이다.

 “나 역시 걱정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긴축 정책을 펴 왔고 그 효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는 잡혀가고 있고, 부동산 가격은 하향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연착륙 쪽으로 가고 있다.”

 -시장의 효율에 따른 성장을 강조하는데, 사회주의 중국에서 시장은 무엇인가? 사회주의와 시장은 공존할 수 있는가?

 “사회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핵심이다. 옛 소련은 사회주의를 국유경제로 봤다. 국가 독점이다. 덩샤오핑의 사회주의는 ‘함께 부유해지는 것(共同富裕)’이다. ‘공동부유’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면 시장 시스템도 이용하자는 것이다. 시장은 그냥 시장일 뿐, 체제와는 상관없다. 경제 운용의 수단일 뿐이다. 자원배분이 시장 가격에 따라 이뤄지는 것, 그게 시장이다. 자본주의 국가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공동부유’는 지금 중국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지.

 “요원하다. 시장 시스템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고 법치(法治)는 더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빈부격차는 부정부패와 국유기업의 독점이 낳은 병폐다. 그러니 성장 패턴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부패와 빈부격차를 낳을 뿐이다. 투자 수익보다 임금이 주된 소득원이 돼야 하고, 투자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받쳐주는 성장을 해야 한다. 중국이 당면한 과제다.”

 - 중국도 수출이 예전만 못한데 내수가 성장을 받쳐줄 만큼 되는가? 내수가 중요하다면 위안화 가치도 올리는 쪽이 맞지 않는가?

 “환율의 시장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최근 인민은행(중앙은행)이 환율변동폭을 하루 0.5%에서 1%로 늘린 게 이를 말해준다. 지금 환율(달러당 약 6.29위안)은 균형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환율 시장화는 개혁·개방 과정에서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이 합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그들이 저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왜 인민폐(人民幣) 탓으로 돌리는가. 그러니 오만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정부 주도의 투자가 아직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뒷면을 봐야 한다. 중국은 시속 300㎞가 넘는 고속철도 건설에 3조 위안(약 540조원)을 투자했다. ‘속도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결과는 어떤가? 원저우(溫州)에서 철도 추돌사고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패가 낳은 참사다. 국가가 나서면 부패가 따라온다. 한때 칭송이 자자했던 ‘충칭(重慶)모델’도 마찬가지다. 한 해 재정수입의 5배가 넘는 투입에 힘입어 경제는 15% 정도 성장했다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하겠는가? ‘충칭모델’은 실패했다. 그래서 요즘 충칭이 시끄럽다.”

 -올가을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면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개혁은 더 활발하게 추진돼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금 지도부 개편을 앞두고 개혁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큰 방향은 ‘시장화’ ‘법치화’로 잡혀가고 있다. 시진핑 부주석 역시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개혁이 더 활기를 띨 것이라는 얘기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한·중·일 FTA가 논의되고 있다. 우 교수의 생각은.

 “서로의 이익이 균형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협상은 타결된다. 전체를 맞추다 보면 국부적으로 피해를 보는 분야가 꼭 생긴다. 한국의 농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농업은 특수한 분야다. 정치적으로 발전하면 전체를 그르칠 수 있다. 양측이 이 분야를 특별하게 고려해야 한다. 중국 정부도 한국 농부를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중국과 일본보다는 중·한 FTA가 더 쉽게 진전될 것으로 본다.”

 -중국이 경제 대국이 되고 국제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북한이 점점 더 큰 부담 요인이 되지 않는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사실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다. 중·북 관계가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다. 한국에는 여덟 번째 왔다. 북한에는 방문 신청을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우 교수께서 시장주의자라서?

 “(웃음) 모르겠다. 인민은 굶는다는데 미사일이나 쏘아대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가서 현실을 보고 싶은데 오지 말라고 막으니….”

 -‘중국 모델’이 학계에서는 아직 이슈다.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말도 있는데, 중국 모델은 존재하는 것인가?

 “자유주의를 강조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알겠는데, 베이징 컨센서스는 무슨 내용인지 도통 모르겠다(웃음). 중국 모델은 없다.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중국 모델이라는 것은 계획·통제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기에 시장과 계획, 두 요소가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효율을 강조한 서구 자본주의 역시 위기를 겪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 교수의 생각은.

 “금방 부서지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비관적이다. 그들(서구인)은 소비를 너무 많이 한다. 저축을 모른다. 복지 사회라는 명목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장점이 적지 않지만 ‘표(선거)’에 구걸해야 하는 것은 문제다.”

만난 사람=김수길 주필
정리=한우덕 기자

◆우징롄(吳敬璉)=1930년 장쑤(江蘇)성 우진(武進)의 한 언론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4년 상하이 푸단(復旦)대를 졸업하고 예일대(1983년)와 스탠퍼드·MIT(1994~96년)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중국 경제학계 주류인 ‘시장파’의 거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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