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대치동 교육통신] 어, 대치동이 웬일로 한산하지?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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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치동은 한산하다. 식당·술집·커피숍·수퍼마켓·미장원 등에 손님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게가 썰렁하네요.” 가끔 가는 식당 주인에게 슬쩍 물어보니 쓸쓸한 대답만 돌아온다. “요즘 시험기간이잖아요.” 대치동의 중·고등학교는 19~30일 사이 중간고사를 치른다.

 중·고생이 있는 집에서는 대부분 시험 한 달 전부터 온 집안에서 긴장 모드가 감지된다. 냉장고 문짝에는 시험일정표가 붙어 있고, 시험 2주일 전부터는 엄마들이 바깥 모임을 자제한다. 일주일 전부터는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 통화도 하지 않으며 시험기간 중에는 거의 대부분 연락두절이다.

 그렇다고 엄마들이 집 안에서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동네 건강원에서 전교 1등이 먹는다는 보약 한 재 지어놓았고, 학교 앞 서점에서 각 학교 기출문제 복사본도 구해 놓았다. 학원 결정이나 과외 선생님 섭외는 한 달 전에 끝난 상태다.

 자녀의 시험은 가족 행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요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손자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집안 모임은 시험 이후로 연기되고 제사에도 오지 말라고 한다. 그저 며느리가 아이들 시험 잘 보게 도와주기만을 바란다. 시험이 끝난 뒤 여러 손자·손녀 중 시험을 가장 잘 본 학생이 두툼한 용돈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며느리 칭찬도 덧붙여서 말이다.

 시험기간이 되면 동네 전체가 긴장을 한다. 아파트 게시판에는 ‘○○일부터 ○○일까지-시험기간 중에는 인테리어 공사가 불가합니다’라는 관리사무소의 공지문이 나붙는다. 시험기간에는 못 하나 박지 못한다. 수능 보는 날 출근시간을 조정하고 나라 전체가 기도하는 모습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하다고 하던데 얼핏 대치동의 시험기간도 그런 모습의 축소판 같다.

 학생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귀가 후 곧장 학원에 가거나 과외수업을 받는다. 물론 스스로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도 많다. 그러나 평소 준비하던 경시대회도, 영어 공인 시험도, 동아리 활동도 모두 중단한 상태다. 지금은 ‘내신(학교시험)에 올인’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내신에 대한 공포는 신입생의 경우 더 심해 1학년 어머니들은 무조건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를 알고 각 학원은 학교별·과목별 내신 대비 강좌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가뜩이나 불안한 어머니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과연 내신은 사교육의 힘을 꼭 빌려야 하는 걸까. 내신은 고3 때 한 번 치르는 수능과 달리 1년에 네 번씩 보는 시험이다. 정해진 양의 출제 범위가 있으며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직접 문제를 낸다. 즉 상대를 알고 싸우는 비교적 공정한 게임이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으면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 가늠할 수 있고, 수년간의 기출문제를 보면 시험 유형도 알 수 있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내신 비법의 첫째는 ‘복습’이다. 매일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면 시험 대비가 수월한데 대부분의 학생은 3월 초에 배운 것을 4월 중순에 처음 들여다본다. 배우긴 분명히 배웠는데 알 듯 말 듯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 당연히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진다. 한편 어떤 학생은 시험이 다가와도 노는 것처럼 설렁설렁 공부를 한다. 그런데 성적은 기가 막히게 잘 받는다. “쟤는 괴물이야” 제쳐놓지만 실은 그 학생은 평소 수업시간에 충실히 듣고 복습을 철저히 해 시험이 다가와도 여유가 있는 것이다.

 시험공부의 순서도 중요하다. 교과서→부교재→선생님이 주신 프린트→노트→참고서→기출문제 순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많은 학생이 이 순서를 무시한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일수록 교과서는 대충 읽고 기출문제만 열심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기출문제는 이미 출제한 문제이므로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교과서를 보면 수없이 반복해서 공부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깨알 같은 글이 적혀 있고 색색의 줄이 그어져 있으며 무수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내신 관리는 ‘학기말 성적표’를 겨냥해 해야 한다. 성적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수행평가를 합해 학기말 성적표로 나오며 이것이 진짜 성적표다. 그러니 혹여 이번 중간고사에서 쉬웠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분명 기말고사는 어렵게 나올 것이다. 석차로 등급을 나누기 위해서는 변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시험이 끝나는 날 아이들은 노래방·PC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어머니들은 삼삼오오 커피숍·호프집에서 모임을 갖는다. “국어 문제가 어려웠지요.” “영어는 무슨 문제가 그래요?” “역시 문법은 철저히 준비해야겠어요.” 다들 교육 전문가답게 시험 문제들을 분석하고 다음 시험을 예측한다. 유령 도시였던 대치동은 비로소 다시 살아난다. 전쟁처럼 치렀던 중간고사를 뒤로 한 채 “자~ 우리 모두 수고했어요. 건배!”

이미애 샤론 코칭&멘토링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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