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연예계 풍토 건강해야 한류 지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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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고성표
탐사팀 기자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이 있다. 금품 상납을 강요받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연예인 지망생 관련 뉴스가 그렇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이런 유의 사건이 터지지 않은 해를 찾기 힘들 정도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 장모(51)씨가 소속사 연예인 지망생 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자들에게 장씨는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갑’이었다. 보통 이런 사건의 피해자는 10대,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대다수다. 하지만 ‘갑’의 횡포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 30대 이상의 소위 세상 물정을 알 만한 이들 중에서도 피해자가 적지 않다. 본지가 보도한 한 연예협회 관련 추문(4월 14일자 20면)이 대표적 사례다.

 “연예계에서 성공하려면 성 상납을 잘해야 한다.” 회원 10만 명을 자랑하는 한 연예협회 지회장이자 연예기획사 대표인 A씨가 가수지망생 P씨에게 한 말이다. 30대 후반의 유부녀인 P씨는 젊은 시절 가수의 꿈을 이루고자 뒤늦게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P씨는 “A씨가 케이블 방송사 고위층과 협회 간부 등에게 성 상납을 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거부하자 폭언과 주먹질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음반을 내고, 방송 출연을 위해 뜯긴 돈도 억대에 이른다고 했다. 협회 측은 P씨처럼 스펙을 쌓으려는 신인이나 무명들을 대상으로 ‘상(賞) 장사’까지 했다.

 연예지망생 100만 명 시대라고 한다. 한류(韓流)와 K팝 열풍 때문인지 연예계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디션을 통과해 최종 관문까지 갈 가능성이 1%이고, 기획사에 들어가 스타가 될 확률은 0.01%라고 할 정도로 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말한다. 중앙 무대는 고사하고 지역 방송이나 지방 축제·행사 무대에 서기 위한 신인이나 무명 연예인들의 경쟁 역시 치열하다. ‘갑’으로 행세하는 일부 연예계 관계자들은 이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다. 연예 매니지먼트 관련법을 개정하고,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등 사회 각계의 노력도 무색할 지경이다. ‘장자연 사건’ 후 3년이 지났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을’은 요행이나 편법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갑’의 반성과 각성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문화콘텐트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시작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 같은 연예계 비리에 대한 근본 처방 없이는 모두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 연예계의 토대가 건강성을 회복할 때 한류와 K팝도 세계 무대에서 생명력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