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 학생이 사이버폭력 가해자

중앙일보

입력

최근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을 악용한 언어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한 초등학생이 자신을 헐뜯는 글이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오르자 며칠동안 결석한 일이 일어났다.

특히 이 글은 성인들도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할 정도의 저속한 표현으로 성관계를 묘사했으며 작성자가 같은 반 여학생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30일 대전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일 대전 모 초등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 학교에 다니는 A군(5년)이 인기가수와 변태적인 성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의 `XX의 사실''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A군의 아버지 K(40)씨는 평소 활달한 성격이던 A군이 이 글을 읽은 뒤로 정신적인 충격과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며칠동안 학교에 가지 않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IP주소 등을 조사한 결과 이 글은 A군과 같은 반의 B양이 집에서 작성한 것으로 밝혀냈다.

B양은 10대 여학생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 잡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던 중 인기 여가수가 성관계를 가졌다고 모함하는 글을 읽고는 이 글에 나오는 상대 남자이름만 A군의 이름으로 바꾼 채 그대로 학교 홈페이지에 옮겨 놓은것.

B양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작성 동기에 대해 "그냥 올리고 싶어서"라고 답하고 A군의 이름을 쓴 이유에 대해 "아무런 감정은 없었고 회장이라서 생각났다"고 말하는 등 자신이 저지른 `사이버폭력''이 `범죄''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초.중고등학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생들 간의 비방,욕설 등의 언어 폭력과 학생들이 교사를 험담하는 익명의 글이 많이 오르고 있어 학교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일부 학교는 실명이 아니면 글을 남길 수 없도록 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소양교육이 절실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은 "최근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 사건을 취급해 봤지만 초등학생은 처음이라 씁쓸하다"며 "당초 이 글의 작성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었으나 B양이 형사미성년자(만14세 미만)이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고 종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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