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의 주요 활동 취재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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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10일'(존 리드 지음, 두레 펴냄)이라는 참 흥분되는 책이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현장을 취재한 미국인 기자가 현장의 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책이지요. 현장 취재 기자가 쓴 책으로는 아마 동서고금을 통틀어 불세출의 명작 아닌가 싶습니다.

그 책이 그토록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사건이 주는 드라마틱함에 힘입었던 이유도 있을 겁니다. 물론 취재 기자의 열정적 취재가 바탕되기는 했지만, 제목에서처럼 세계를 뒤흔들 만큼의 큰 사건이었기에 이후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이겠지요. 사건 기자에게 그처럼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는 행운입니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런 행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사건 기자들이 꼭 취재하고 싶어했을 사건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올 초부터 온갖 매스컴의 톱 뉴스를 장식했던 총선 연대의 낙선운동은 그 첫손에 꼽히는 사건일 겁니다.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문경란 님이 바로 그 총선 연대의 낙선운동을 취재한 기록을 모아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문경란 지음, 나남출판 펴냄)라는 책을 냈습니다.

낙천 대상자 선정 작업에서부터 4.13 총선 개표에 이르기까지 총선연대 활동의 현장을 철저히 따라붙었던 취재기자의 소중한 기록들입니다. 지은이는 서울시청 출입 기자로 활동하다 지난 1월 NGO팀에 참가, 총선연대의 활동을 밀착해서 취재하게 됐다고 합니다.

총선연대의 당시 활동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쾌거였습니다. 매일 일간지의 1면 톱을 장식할 만했고, `유권자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우리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의 의미는 그 자체로서보다는 그 사건의 이후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른바 총선연대의 활동은 유권자 혁명을 이끌어냈지만, 그 혁명의 결과는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지요.

당시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에는 자신들을 선출해 준 유권자의 뜻을 살피는 일이 없는 듯 합니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그치지 않는 꼴을 보기 위해 그토록 애써서 이룬 쾌거였단 말인지요. 4.13 총선 당시만 해도 `이제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었으니, 정치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었었지요.

기대는 다시 또 물거품이 된 모양입니다. 당시 총선연대의 활동을 `유권자 혁명'이라 부르기도 남우새스러울 정도입니다. 지금 문경란 님의 이 책을 다시 들게 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꿈을 꾸며 그때 그렇게 애써 뛰어다녔는가. 우리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뽑아낸 정치인들은 저 지경이 돼 있는가. 되돌아 살펴볼 근거가 될 것이란 말입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우리 정치권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 국민들의 냉소적인 태도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바로 총선연대의 활동이었습니다. 이 책 안에는 총선연대가 얼마나 치밀하게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내기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운동에 임했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취재 현장에서 기자가 겪었던 심경의 변화까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문사 안팎의 알력에 의해 기자가 흘려야 했던 눈물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의 사건을 이토록 치밀하게 집중 취재하고, 한 권의 책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신문 기자로서 적지 않은 행운입니다. 그 취재 기록이 가지는 가치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기자도 독자도 아니고, 그 사건의 주역, 혹은 대상이었던 사람들의 긍정적 변화에 따른 것입니다. 책 한 권을 펴들고, 우리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들이 자꾸만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만 더하는군요.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 이 글에서 함께 이야기한 책들
`세계를 뒤흔든 10일'(존 리드 지음, 두레 펴냄)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문경란 지음, 나남출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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