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팀결산 (4) - 볼티모어 오리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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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을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14억원. 네번째로 비싼 연봉에 성적은 지구 4위. 30대 중반을 넘긴 주전들의 평균연령.

97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챔피언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몰락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승을 거두는 데 시카고 화이트삭스보다 10억원을 더 사용한 '자선단체' 볼티모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올 시즌 '최악의 팀'이다. 팀이 이 지경이 되자 그동안 베테랑만을 고집하던 볼티모어의 투자가들도 마침내 세대교체를 허락했다. 하지만 열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1. 때 늦은 후회

브래디 앤더슨(37), 앨버트 벨(34), 마이크 보딕(35), 윌 클락(36), 칼 립켄 주니어(40), B.J. 서호프(36), 마이크 팀린(34), 리치 애머럴(37), 제프 코나인(34), 제시 오로스코(42), 제프 레버레이(35), 헤롤드 베인즈(41).

메이저리그 노장 선수들의 전체명단을 뽑은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없지만 이들은 모두 꾀꼬리가 그려진 오리올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러한 선수구성으로 볼티모어는 지난해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은 물론, 토론토에까지 밀리며 지구 4위로 추락했고, 곧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시즌 전 볼티모어는 오로스코를 뉴욕 메츠로, 레버레이를 캔자스시티로 보냈다. 7월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맞춰서는 본격적인 선수팔기에 나섰고 1승에 목말라하는 세인트루이스, 뉴욕 메츠,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틀란타 등에 클락, 서호프, 보딕, 팀린, 베인즈, 찰스 존슨을 팔았다.

하지만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대가는 컸다.

가장 단적인 예는 캘빈 픽커링(24). 98년 마이너리그 더블A를 폭격했던 픽커링은 붙박이 1루수 라파엘 팔메이로(현 텍사스)가 자유계약선수로 풀리자 주전으로의 기용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볼티모어는 팔메이로를 대신해 이미 황혼에 접어든 클락을 영입했고, 대체요원으로 코나인까지 데려오면서 그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결국 유망주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메이저리그 입성의 '타이밍(timing)'을 놓친 픽커링은 이제는 마이너리그에서조차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2. 무너진 마운드와 허울뿐인 타선

가장 큰 타격은 스캇 에릭슨(32)의 부상이었다. 내용을 떠나 매년 2백이닝 이상을 책임져 주던 '든든한 선발' 에릭슨은 7월이 오기도 전에 5승 8패 방어율 7.87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전력에서 이탈했다.

'차기 에이스' 시드니 폰슨(4.82 9승 13패)과 함께 제이슨 존슨(7.02 1승 10패)은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큰 기대를 갖고 영입핸 패트 랩 역시 시원치 않았다.

방어율 5.37(AL 12위)의 폭격당한 마운드에 빛이 된 이들은 라이언 콜미어와 호세 머세디스.

트리플A 로체스터 레드윙스의 마무리였던 콜미어는 팀린이 떠나고 미네소타에서 영입한 마이크 트럼블리마저 난조에 빠진 7월 말 메이저리그로 승격, 13세이브(1패, 2.39)를 거두며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을 한숨 돌리게 했다. 세이브 실패는 단 한번.

머세디스의 활약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97년 선발투수로서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미래 밀워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여겨졌던 머세디스는 어깨부상으로 지난 2년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머세디스는 오리올스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올 해 팀내 최다승(14승)을 올리며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타선에서는 중심타선의 파워 부족이 심각했다.

95년 메이저리그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50 2루타를 달성했고, 지난 8년동안 매년 30개 이상의 홈런을 쳐냈을 정도로 파워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는 앨버트 벨은 도무지 믿을 수 없은 23개의 홈런을 기록했으며, 96년 1번타자로서 50홈런을 기록했던 브레디 앤더슨도 19홈런에 머물렀다.

그나마 컨디션이 좋았던 존슨, 서호프, 보딕이 트레이드된 후반기의 볼티모어 타선은 황량한 사막과도 같았다.

3. 터널의 끝을 기대하며

마침내 '팀 재건(rebuilding)'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올 시즌은 영광의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는 볼티모어의 차례가 왔다.

문제는 볼티모어가 들어선 터널이 더 길어보인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볼티모어는 풍부한 재력과 거대시장이라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팀 관계자들은 아직 재건에 나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하다.

올 해 볼티모어는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마이너리그에서도 큰 실패를 경험했다. 볼티모어는 99년의 드래프트를 통해 팜(farm)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지만, 메이저리그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유망주들이 모조리 무너져버리는 아픔을 맛봐야만 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마이너리그 관계자들의 탓이 크다

앞서 말한 픽커링은 트리플A 60경기에 출장 .210의 타율에 6홈런을 기록했으며, 립켄의 후계자로 지목된 라이너 마이너는 '도끼질' 같은 스윙으로 메이저리그 적응에 실패했다. 찰스 존슨의 빈자리를 이어받아야할 포수 제이슨 워스 역시 더블A에서 기운없는 한 해를 보냈다.

99년 더블A 보위 베이삭스에서의 돌풍으로 급히 메이저리그로 올려졌던 최고의 투수유망주 매트 라일리는 메이저리그에서 난타당했던 충격에 부상까지 곂쳐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6.77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게다가 '베테랑 세일'에서 건진 루이스 리베라와 레슬리 브레아의 상태마저도 좋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에이스 마이크 무시나를 잡지 못한 것이다. 정리대상은 따로 있는데도, 연봉총액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시나와의 재계약 협상에서 저자세를 보인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후회는 아무리 늦어도 빠른 것이다'라는 격언이 옳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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