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탄핵정국 때 천막당사서 121석 … 이번에도 ‘100석도 다행’ 전망 깨고 1당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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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이 고사 직전의 당을 구해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 때도 “우세 지역구 6(한나라당) 대 144(열린우리당)” 같은 절망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난무할 때 구원 투수 역할을 했다. 19대 총선 결과를 놓고 “기시감(旣視感)이 든다”는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8년 전엔 선거를 제대로 준비할 새도 없었다. 그해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여론은 반(反)한나라당으로 돌아섰다. 한나라당은 총선(4월 15일)을 20여 일 앞둔 3월 23일 탄핵안 가결의 주역인 최병렬 대표 대신 박근혜 대표를 새 얼굴로 내세웠다. 당시 박 위원장은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고, 유권자들에게 108배를 하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121석을 얻어냈다.

 이번엔 4개월여의 시간이 있어서인지 ‘박근혜식 선거’는 더 진화하고 정교해졌다.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정강·정책 등 총선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말 바꾸는 세력이 과반을 차지하면 국회가 이념의 전쟁터, 정치 싸움터가 된다” 같은 핵심 논리를 직접 만들었다. 또 철저하게 원톱으로 전국을 누볐다. 여러 인사와 함께 ‘세 과시형 유세’를 하던 2004년보다 자신감이 쌓였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게다가 이번 총선은 8개월 뒤 치러지는 12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어 박 위원장 개인으로서도 힘들고 중요한 관문이었다. 정수장학회 등에 대한 야권의 공격은 ‘대선 후보자 검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서웠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합군을 사실상 혼자 상대해야 했다. ‘낙동강 벨트’라는 한정된 지역을 공략하는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 투표 독려로 간접적인 야권 지원에 나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같은 대권주자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부산을 다섯 번이나 찾는 등 승부를 피하지 않았고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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