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환 첫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

중앙일보

입력

지난 25일 서울 소격동 선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 유쾌한 씨를 보라'전은 일단 재미있다.(2001년 1월21일까지)

'만년 자유인' '무소속 몽상가' '장로'('장기간 노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지은 별명)주재환씨가 다음달 회갑을 앞두고 연 생애 첫 개인전이다.

주씨는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지 한학기만에 '차비가 없어서' 중퇴했다.

그뒤 야경꾼·행상·외판원·방범대원·민속가면 제작자·고등공민학교 미술강사·누드미술학원장·민속연구소 연구원·출판사 편집장 등의 직업을 거쳤다.

미술분야에서는 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이며 87년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고 박종철 열사 추도 반고문전'도 열었다.

제도권 화단과는 담을 쌓고 시대와 삶을 아우르는 작업에만 관심을 가져온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은 모두 1백29점. 지난 20년간의 작업을 총정리하느라 숫자가 많아졌다.

드로잉·만화·사진, 인쇄물 콜라주·오브제·회화·페인팅·설치 등 다양한 형식으로 풍자와 비유·속담과 수수께끼·즉흥성과 우연성 등을 담아냈다.

초기작으로는 근대미술의 차가운 정신성을 담은 몬드리안의 격자를 호텔방안의 세속적 풍경으로 둔갑시킨 '몬드리안 호텔', 모더니즘의 대부인 뒤상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위계질서에 대한 오줌발 세례로 바꾼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등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 볼펜 한자루의 잉크가 마를 때까지 동심원을 그린 '볼펜의 수명', 갖가지 청사진·설계도로 유토피아에 대한 망상을 꼬집은 '몽유도원도', 98년부터 비닐끈·쇼핑백·은박지·신문·스티커·장난감 등을 활용해 시작한 '1천원 예술' 작품 등이 2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

3층 전시장엔 50대에 들어서 비로소 시작한 유화 30여점이 걸려있다.

작가는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데 찐득한 유채물감이 어울리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유채물감을 가래침으로 여기고 캔버스에 내뱉는다고 할까"라고 덧붙였다.

푸르른 달빛 아래 꽃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혼들처럼 모여 서있는 '우금치 달맞이', 마음속의 번뇌와 갈등을 나타낸 '천둥과 번개' 등 점잖은 유화들이다.

미술관측은 "인생의 깊이와 폭, 거침없고 유유자적한 작가의 성품을 고스란히 반영한 재미있고 의미깊은 작업들이다. 엉뚱한듯한 작품도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02-733-8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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