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강운구의 쉬운 풍경 <4> 법정 스님의 자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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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전남 순천 2004. ⓒ강운구

이번에는 가운데에 흰 공간을 감싼 길고 큰 틀이 하나만 있다. 그것은 여전히 나무 그림자 그림으로 차 있다. 사선으로 누웠던 그림자가 수직의 벽을 만나자 똑바로 서서 틀 속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있는 나무라서 좀 더 또렷할 뿐, 여기까지는 지난 회의 사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벽의 길쭉한 틀 오른쪽 아래에 작은 나무팻말 하나가 눈에 띈다. 그것은 아마 우연인 듯, 그 위의 큰 틀과 가로·세로의 비율이 거의 같다. 거기에 ‘入禪(입선)시간’이라고 붓으로 쓰여있다.

어떤 분야의 작품에서건 그 작품의 제목은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뚜렷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제목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기도 하고 적게 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은 과장되거나 하기도 해서 내용을 호도하기도 한다.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진가들은 그 사진을 찍은 ‘장소와 때’로 제목 역할을 하게 한다. 찍힌 내용을 사진가의 주관으로 설명하거나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거기에 있다. 이 사진은 ‘전남 순천, 2004’가 제목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사진을 보고 느끼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더욱이 ‘入禪시간’이란 글씨가 그 주위의 그림자와 어우러져 이룬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더 친절하게 처음으로 입을 열자면 “전남 순천 불일암, 2004”다. 불일암은 물론 저 법정 스님이 짓고 머물던 암자이다. 그리고 팻말의 글씨는 법정 스님의 친필이다. 스님이 참선시간에 댓돌 옆에 내놓고, 방문객들에게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은근하게 요구하던 것이었다. 2004년이면 법정 스님은 이미 오래 전에 거기를 떠나 강원도의 ‘토굴’에 머물 때다. 그 팻말은 스님이 불일암을 떠난 뒤에도 거기에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이 사진이 확 달라져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그림자, 법정 스님의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 어른거리기 때문일 터이다. 나는 보편성을 좋아한다. 그래서 법정 스님을 거론하면, 보편성은 사라지고 특별한 점만 떠오를 것이므로 여태까지 입다물고 있었다. 이렇게 시시콜콜 늘어놓자면 사연 없는 장면은 없을 것이다.

신문에 난 한 사진에서 법정 스님이 머물던 강원도 ‘토굴’의 뒷간 외벽에 ‘기도下라’고 세로로 써 붙인 것을 보았다. 그것도 스님의 친필이었다. 스님은 팻말의 글로서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영역임을 표시하며 은연중에 소박한 ‘소유’의 기쁨을 누렸던 듯하다.

작품 제목이 확실하게 관람자(독자)를 붙들려고 지나치게 되면, 거개의 경우 그에 못 미치는 내용 때문에 실망하게 되는 수가 많다. 여전히 이 사진엔 ‘入禪시간’이란 제목을 달지 않는다.

강운구(71)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빌린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이래 50여 년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왔다. 한국적 시각의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 영상을 개척했다. 글을 무섭게 잘 쓴다는 평도 듣는다. 『경주 남산』 『우연 또는 필연』 등의 사진집과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 사진 산문집, 그리고 『강운구 사진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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