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품질 위에 신뢰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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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경제부 주력산업정책관

사람들은 비슷한 제품이라도 루이뷔통, 구찌 등 이른바 ‘명품’에 더 많은 돈을 쓴다. 또 벤츠, 아우디 등 독일 차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무슨 이유일까. 몇 년 전 의류 선전에서 ‘1년을 입어도 10년 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옷’이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아마도 명품의 조건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품질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용 초기에는 그 성능과 품질에 감탄했다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애초의 품질과 성능이 유지되지 못한 채 시장의 외면을 받아 사라진 제품을 수없이 봐왔다. 예전에 침몰한 타이타닉 선체에서 수장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내용물이 그대로 보존된 루이뷔통 가방이 발견돼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렇듯 명품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악조건 속에서도 최초의 품질과 성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초기 성능을 나타내는 품질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개념으로서, 전문용어로 ‘신뢰성(reliability)’이라고 한다. 이것이 확보돼야 소비자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명품’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국 제품은 어떠한가. 한국은 지난해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고 2020년까지 무역 2조 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소재·부품의 수출 규모도 사상 최대인 2553억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선진 산업국 문턱에 도달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휴대전화·TV 등 몇몇 제품을 제외하고는 ‘Made in Korea’가 독일·일본 등 선진 제조 강국 제품에 비해 아직도 저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품질은 확보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성능과 품질까지 책임지는 신뢰성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진국을 추월하고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뢰성을 바탕으로 소재·부품의 격을 높이고 명품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는 먼저 제품의 설계단계부터 철저하게 신뢰성 개념을 접목해 나가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물류회사 페덱스에는 ‘1:10:100’의 법칙이 있다. 설계단계에서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면 1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생산단계로 넘어간 뒤에 문제를 해결하려면 10의 비용이 필요하고, 고객에 가서는 100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기획·설계 단계부터 고객과 신뢰성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제품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신뢰성을 경영활동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신뢰성 향상 활동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담조직을 갖춰야 한다. 보쉬 등 선진기업이 자체 신뢰성 전문인력을 활용해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전 단계에 걸쳐 신뢰성을 체화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좋은 사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 경영을 전사적 기업문화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다. 제품에 대한 신뢰가 꾸준히 축적되어 나갈 때 소비자의 높은 충성심이 생기고, 스스로 제품을 홍보해 지속적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뢰성이 일시적 노력이 아닌 기업문화로 정착돼야 하는 이유다.

 이제 세계경제는 단순한 품질, 기술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품질과 성능을 보증하는 신뢰성 경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산업의 과제이자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격을 바꾸고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남기만 지식경제부 주력산업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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