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러시아 가스관, 중국 거쳐 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

우리나라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구상은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가스관 노선에 대해서는 의견도 다양하고 실제 추진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2011년에는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우리나라에 공급하는 로드맵에 서명한 바 있다. 2008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2년 만에 구체적인 계획이 합의되면서 우리나라도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 시대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의 앞날에는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의 정치·경제적 위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대통령 당선에 따른 러시아 에너지정책의 향방, 세계 천연가스시장 여건 변화 등 많은 불확실성이 쌓여 있어 기대와 우려가 혼재한다. 수시로 불거지는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긴장과 함께 러시아 천연가스가 예정대로 공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 노선, 소위 서해노선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을 경유하는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노선 구상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가 동북아 에너지시장, 특히 천연가스시장의 허브(hub)로 발전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천연가스를 수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라인 가스나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중국·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수입과 수출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동북아에서 가스 교역의 중심지가 된다는 의미다. 지금 논의 중인 남·북·러 가스관과 함께 서해노선이 건설된다면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대륙과 연결된 환상망(loop) 천연가스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두 개 노선 중 어느 것 하나로만 연결된다면, 우리나라는 에너지 섬 처지는 벗어날지언정 여전히 에너지 반도(半島)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영국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연결되는 양방향 해저 배관이 있어 물리적으로는 섬나라이지만 천연가스 교역에서는 유럽 대륙의 일부가 되고 있으며 천연가스 거래 허브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가스 매장량이나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천연가스 생산량을 고려하면 서해노선은 우리나라 에너지안보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중국 경유 가스관은 현재 추진 중인 남·북·러 가스관의 북한 리스크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만일의 경우 북한이 가스 공급을 차단한다고 해도 여전히 중국을 통한 가스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해노선이 한국을 통해 북한으로까지 확장된다면 남·북·러 노선의 북한 리스크는 거의 사라질 수 있다. 북한 지역의 가스 수요가 늘어날 경우에도 남쪽에서 올라가는 노선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노선이 함께 있는 것이 하나의 노선보다 한반도의 가스 수급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도입단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우리나라가 동북아를 아우르는 파이프라인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다면 현재 중동·호주 등에서 수입하는 LNG 도입 협상력이 강해지는 효과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서해노선을 통한 한·중 연결 구상은 앞으로 다가올 한·러 가스 도입 조건 협상에 촉진제가 될 수 있다. 현재의 천연가스 시장 여건을 볼 때 우리에게 복수 대안의 존재는 러시아에는 경쟁 압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도 두 개의 노선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천연가스 수출과 극동지역 경제개발이라고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노선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다는 관점에서 당사국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검토가 필요하다.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