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룡의 행복한 은퇴 설계] 노후 준비 1순위는 ‘월급’… 자산을 연금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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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박모(67)씨는 아들이 보내오는 용돈과 동사무소 취로사업에 참여해 버는 약간의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은 전세를 놓은 서울 소재 20평대 아파트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전부이며 다른 금융자산은 없다. 아파트를 팔아서 노후 생활비로 활용하고 싶지만 언제까지 살 지 알 수 없는 마당에 그마저 써버리면 안 될 것 같아 버티고 있다.

 박씨와 같은 은퇴자들이 느끼는 큰 재정적 위험 중 하나는 자신의 수명보다 자산이 더 빨리 소진되는 문제다. 한참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는데 가진 자산을 다 써버려 빈털터리가 된다면 아주 난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의 수명보다 자산이 더 빨리 떨어질 위험을 ‘장수위험’이라고 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런 우려가 더욱 높아진다. 가까운 일본이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장수위험에 있다. 자산 비중이 높은 고령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통화량을 늘려도 경기부양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장수위험을 피하는 좋은 방법은 자산을 연금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씨의 경우 부동산을 처분하고, 여기서 나온 목돈을 즉시연금과 같은 금융상품을 활용해 현금흐름(Cash Flow)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즉시연금이란 목돈을 한꺼번에 맡기면 그 다음 달부터 매달 연금으로 탈 수 있는 상품을 말한다.

 이렇게 부동산이나 목돈 등의 자산을 연금화하면 자산관리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준비할 수 있다. 연금화한 만큼 매월 생활비가 입금되기 때문에 장수위험에 대한 우려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또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신의 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운용은 고사하고 자칫 금융 사기나 가격 변동, 판단 실수 등으로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다.

 즉시연금을 활용해 자산을 연금화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기본적인 생활비는 종신 지급형으로 선택한다. 10년이나 20년 지급형을 선택할 경우 오래 생존하게 되면 연금 지급이 끊어질 수도 있다. 둘째, 부부형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편이 연금을 타다가 사망할 경우 남은 부인이 연금을 이어서 지급받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목표 생활비의 10% 이상 더 가입한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이 필요하다면 물가상승을 대비해 110만원 이상 나오도록 충분히 설계한다. 연금상품의 금리와 물가상승률 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일반적으로 고령자 물가 상승이 소비자 물가 상승보다 더 가파르기 때문이다.

 고령화시대는 ‘자산 축적’에서 ‘자산 인출’로 변화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동안 축적한 자산을 현명하게 나눠 쓰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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