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억 들인 '미디어시티 2000' 1회용 실패작

중앙일보

입력

"75억원이 투입된 이번 행사는 무엇을 남겼는가?" (기자)

"실패의 경험이 남는다. 말할 수 없이 구체적인, 소중한 경험이다. " (강홍빈 서울시 부시장)

지난 15일로 막을 내린 ''미디어시티 서울 2000'' 의 조직위원장인 강부시장은 지난 10일 "2년 후에 있을 제2회 행사는 내용과 형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 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서울시가 ''첨단 미디어 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 비엔날레로 정착시키겠다'' 며 야심적으로 시작한 행사는 값비싼 1회용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 행사는 ''도시 : 0과 1 사이'' 를 주제로 9월 2일부터 75일간 경희궁 공원과 지하철 13개 역사, 시내 42개 전광판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됐다. 참여작가는 외국 80명, 국내 52명 등 1백32명에 이른다. 실패로 평가받는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 시내 곳곳에 현수막이 붙어있었지만 시민 대다수가 뭐하는 행사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광판 방영물.지하철 설치물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홍보 실패는 조직위 홍보팀장이 세차례나 바뀐 끝에 공무원이 맡게 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민간 전문가는 관료적 행정절차를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관객이 감명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본 전시라 할 수 있는 경희궁 공원의 ''미디어아트 2000'' 의 경우 모두 22만명이 참관했다.

세계 저명 작가들의 대표작이 일반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작품'' 이었던 것. 송미숙 총감독은 "관객의 수준을 너무 높게 생각했던 것이 실패의 요인" 이라고 말했다.

세번째는 남긴 것이 없다는 점이다. 시 공무원과 산업진흥재단 직원.큐레이터 등을 끌어모아 한시적으로 결성한 조직위는 곧 해산된다.

노하우도 전수되지 않고 매뉴얼도 남지 않는다. 지하철 설치작품을 제외하면 본전시의 대표작들은 모두 각국 미술관으로 돌아간다.

이와 관련, 문화계 인사들은 "우리 수준에서 갑자기 ''세계적인 미디어 문화도시로 발돋움한다'' 는 서울시의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 고 지적한다.

그 정도 예산이면 유망작가 50명을 10년 동안 지원하거나, 미디어아트 교육기관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미술계 인사들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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