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ysses' Gaz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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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이것을 포스트모던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그의 '율리시즈의 시선'에서 발칸반도를 오르페우스의 방황에 비유한다. 아니 어쩌면 제목 그대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앙겔로풀로스는 발칸반도를 여행하면서 뒤돌아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그저 앞으로만 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맹세이다. 오르페우스는 결국 뒤돌아보고만다. 기둥에 묶인 율리시스는 그 노래 소리를 듣고만다. 그것은 그들의 비극적 운명이다. 그것을 거역할 수는 없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매우 이상한 이야기이다. 영화감독 A(하비 키이텔)는 오랜 외국에서의 망명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가 돌아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백년 전에 만들었다고 알려진 그리스의 첫번째 영화인 야나키스와 밀토스 마나키아 형제의 영화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들 형제의 영화는 발칸반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만든 기록영화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 영화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빠져나와 눈이 내리는 거리를 떠나서 그들 형제의 영화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가 이제 방황해야 하는 땅은 전쟁중이다. 바로 마나키아 형제의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부터 시작되었던 전쟁이 그를 맞이한다. 전쟁과 영화는 함께 시작되었고 잃어버린 필름을 찾으려는 영화감독의 소망은 바로 그 영화가 만들어졌던 일백년 전의 바로 그 장소로 인도한다. 영화감독 A를 인도하는 택시운전사는 외르트비즈이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이미 오르페를 지옥의 여왕에게 인도하기 위해 길안내를 맡았던 저승에서 온 사람이다. 그리고 외르트비즈는 이번에는 영화감독 A를 이끌고 발칸반도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길동무가 아니다.
발칸반도의 경계까지 오자 그는 영화감독 A에게 이제 스스로 혼자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 대신 매우 의미심장한 충고를 해준다. 절대 눈길을 밟고 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말한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영원히 과거에 사로잡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러나 영화감독 A는 그 말을 지키지 못한다.

앙겔로풀로스는 매우 이상한 방법으로 영화의 일백년을 축하한다. 그는 영화의 일백년을 생각하면서 영화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에 실려서 우리가 어디로 떠내려가는지를 보고 싶어한다. 그는 영화를 모든 이들에게 축하인사를 보내는 기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속에서 하나의 역사의 계보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계보들이 있을 것이다. 앙겔로풀로스에게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영화의 시작과 그 끝이 궁금하다. 그래서 마나키아 형제가 영화를 만들던 순진무구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 회귀의 여행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직도 진행중인 전쟁과 과거로부터 떠내려온 유령들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시간의 강물이다. 영화감독 A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레닌 동상은 우리를 알 수 없는 시름에 잠기게 만든다. 안개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제와 무자비한 학살은 점점 더 영화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신기루가 되어가고 있음을 일깨운다.

정말로 이 영화는 매우 비유적이면서도 놀랍게도 결코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기는커녕 신화적인 비유와 알레고리에 사로잡힐수록 거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건들은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앙겔로풀로스는 리얼리즘과 신화를 기적적으로 하나로 섞는데 성공한다. 시간은 점점 더 압축되고 인물들은 자기 자신이면서 그 누군가의 목소리의 되울림처럼 웅성거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덧없는 시선에 지나지 않음을 마지막 장면은 매우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보여준다. 영화감독 A는 그가 알고 싶어하던 영화를 찾아낸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다음이다. 그런 다음에 얻은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는 찾아낸 영화에 자기의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린다. '나의 시작은 나의 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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