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없어 특허 95% 사장되는 서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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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 서울대 공대 연구진은 2005년 반도체 플래시 메모리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기술개발에 참여한 기업체가 서울대의 동의 없이 해당 기술을 상용화했다. 서울대 측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려고 했으나 확인 결과 특허출원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이후 기업 측은 상용화된 기술로 연간 약 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허권을 인정받으면 매출액의 0.5%를 로열티로 지불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서울대는 연간 50억원 정도를 날린 것이다.

 #2. 특허괴물(patent troll·기술을 사들여 특허권을 얻은 다음 로열티 수입을 챙기는 회사)로 불리는 미국 인텔렉추얼벤처스(IV)사는 최근 서울대가 개발하고도 국제특허출원을 하지 않은 기술 114건을 건당 1만 달러(약 1130만원)에 사 갔다. 특허출원이 됐으면 수조원에 육박할 기술이었다.

 서울대 내 연구실에서 개발되는 연간 1000여 건의 원천기술 가운데 50여 건을 제외한 대부분이 국제특허출원을 하지 못해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활용 가능성과 신규성 측면에서 국제특허출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서울대 자체 기술은 연간 800여 건. 이 가운데 함께 연구에 참여한 기업의 후원 없이 서울대가 독자적으로 특허출원을 해 수익을 제대로 챙기는 기술은 10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특허출원은 최소 미국·일본과 유럽 국가 한 곳에 내야 하는데 건당 5000만원가량 든다. 또 기존에 낸 국제특허를 유지하는 비용도 매년 5억~6억원이 들고, 국내특허출원 700여 건에도 건당 200만원 정도가 든다. 연간 13억5000만원(2011년 기준)인 서울대의 특허예산으론 어림도 없다.

 예산 부족 이외에 우수한 기술이 사장되는 이유는 교수들이 논문 실적에만 집중하고 특허와 상업화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부 부처의 역할이 분산돼 있어 종합적인 대책이 미비한 탓도 있다. 미국은 ‘지식재산을 위한 자원·조직 우선화 법(Pro-IP Act)’을 제정하고 대학과 기업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을 수립해 운영 중이다. 일본도 ‘지적재산전략본부’가 따로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화한 ‘지적재산권기본법’을 통과시켰지만 산학을 아우르는 특허 보호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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