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1위 제일기획 사장"입사초 동료들에 열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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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 삼성이 여는 대학생 대상 강연회 ‘열정락(樂)서’를 들으러 온 관객들로 6000석이 모두 찼다. 두 번째 강연이 시작할 무렵 갑자기 불이 꺼졌다.

 “앞이 캄캄하십니까? 세상의 높은 벽이 두려운가요?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김낙회(61) 제일기획 사장의 음성이 어둠을 갈랐다. 국내 1위 광고회사를 이끌고 있는 그의 ‘고백’이었다.

 주로 20대인 관객들 앞에서 그는 “눈에 띄는 재능도, 운도 참 없던 청년 시절”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의 경쟁력을 갖게 된 출발점은 열등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사장은 충남 당진이 고향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5남매의 장남이라는 ‘특혜’를 업고 서울로 유학을 왔다. 첫해에 대입 낙방, 재수해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합격했다. 적잖이 방황하다가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겨우 찾았는데, 언론사 최종 면접에서 낙방. 은사의 권유로 제일기획에 입사했다.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입사한 1976년은 광고하는 사람들이 전문가 대접을 받지 못할 때였다. 기업체나 관공서 사무실엔 ‘잡상인(광고·영업사원)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기 일쑤였다. 76년 국내 총광고비는 93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9조6000억원)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입사 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야, 김낙회, 넌 대체 잘하는 게 뭐냐”라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한 번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해서 고민 끝에 짠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선배가 “야, 창문 열어!” 했다는 서러운 일화도 있다.

 김 사장은 “똑똑하고 아이디어 많은 선후배들 사이에서 ‘열폭’할 뻔했다”고 말했다. ‘열등감 폭발’을 줄인 신세대 용어를 구사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는 이후 35년간 광고만 바라봤고, 성공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김 사장은 ‘잡상인’의 ‘잡(雜)’을 ‘job(일자리)’이라고 풀이했다. “내 일자리니 꼭 지켜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무기는 ‘열정’이었다. 열정은 그의 장기인 ‘끈기’와 ‘성실함’으로 배양했다.

 김 사장은 신입사원 때부터 매일 새벽 4시반에 일어난다. 1시간을 온전히 자기 계발에 쓰기 위해서다. 남보다 1시간씩 하루를 일찍 시작하니까 조금씩 앞서 나간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30여 년 지속했으니 남들보다 1년반 정도 시간을 벌어들인 셈이다. 농경시대처럼 근면성으로만 승부한 건 아니다. 월급의 10%를 꼬박꼬박 일본과 미국의 광고 전문지를 정기 구독하고 자료를 구하는 데 썼다. 새로운 트렌드와 사례를 배우니 남들과 조금 다른 ‘자본’이 생겨 든든해졌다. 김 사장은 “아이디어는 타고난 재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시간과 경험, 그리고 노력에서 태어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실천한 또 한 가지는 남을 인정하는 것. 똑똑한 동료가 잘난 척하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다 보니, 실력 있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광고기법처럼 역발상을 한 것이다.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 않으니 오히려 열등감도 줄었다. 김 사장은 “광고는 팀워크가 중요한데, 광고주와 동료와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광고 일을 즐기게 되면서 아이디어도 술술 풀렸다. 스토리보드(광고를 설명하기 위해 만드는 제작물)를 60~70개씩 만들면서도 경쟁 프레젠테이션이 붙으면 엔도르핀이 솟구칠 정도가 됐다. 김 사장은 “끈기 있게, 성실하게 배우니 나만의 아이디어 자산이 생기고, 열등감이 극복되면서 즐길 수 있게 됐다”면서 “‘열등감 폭발’ 열폭이 열정의 폭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자란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다만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라고 조언했다.

김낙회 사장의 조언

■ 끈기있고 성실하라. 아이디어는 경험과 노력에서 나온다.
■ 다른 사람을 인정하라. 사람을 얻는다.
■ 지략(略)가가 아닌 지락(樂)가가 돼라. 즐기는 사람은 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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