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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시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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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이영직
변호사

어느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순서에 따라 신랑,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 선생님 소개가 있고… 등등의 절차를 거친 후 본격적인 결혼식에 들어갔다. 주례 선생님은 절차에 따라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기 전에 신랑과 신부에게 다짐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신랑. “예”라는 답변을 당연히 예상하며 “신랑 아무개군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신부를 사랑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때 신랑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했다. 즉 “지금 마음이야 그렇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결혼을 하는 것이지만, 사람 일이야 알 수 있나요. 요즘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시대에,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라고 한 것이다.

 이른바 근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앞서 이야기한 결혼식에서의 그 신랑 말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해 뜨면 일어나 가족들과 함께 들로 나가 일을 하고, 해 지면 집에 와 잠을 자는 농경시대를 지나 아침에 일어나 혼자 출근해 저녁에 들어와 잠을 자는 형태로 삶의 모습이 바뀌어 왔다. 나아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제는 대규모 공장이나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근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일을 하던 근무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즉 일터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됐다.

 또한 사용자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 도급, 위탁, 용역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관계가 생겨났다. 근로자로서는 자신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자신이 소속된 회사가 어딘지, 누구로부터 임금을 받는지 잘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다 전에는 회사가 망하거나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 한 정년퇴직을 예상하면서 근무했으나 이제는 이를 기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맞이해 정치적·경제적으로 주류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자신을 계발하라고 다그친다. 새로운 시대는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형태의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다’ ‘뛰어난 소수가 다수를 이끌어가는 시대다’ 등의 이유를 들어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로 자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이 생존을 위해 유리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유목주의’라는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고정된 땅에서 일하는 농경민과 같이 살 게 아니라 풀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과 같이 고정된 관념과 삶의 자세를 버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유목주의가 단순히 자신의 물질적인 생존을 위한 변화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급속하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기존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지적·정서적인 능력을 갖추라는 게 원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변화 과정에서 실패했을 때 자신의 가정적·물질적인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당한다면, 그리고 그 위협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지 않다면 그 누가 기꺼이 변화에 도전할 수 있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외환위기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실직당하고 파산함으로써 한순간에 가정이 파탄나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를 너무나도 흔히 보아온 우리로서는 변화에 대해 어찌 더욱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혼을 앞둔 신랑이 희망찬 가정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정이 존속하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시대를 맞이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거를 앞둔 탓인지 무기력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우리의 불안을 최대한 잠재울 수 있는 정치세력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다수 세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