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인, '해품달' 연기 논란 묻자 "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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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마도 우리는, 첫사랑에게 진 죄가 있다. 낯선 감정을 어쩌지 못해 어설프고 미련하게 행동했던 죄, 그렇게 사소한 오해를 쌓아만 두다 종국에는 그 사랑을 무너뜨린 죄. 그 시절을 떠올릴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그런 부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건축학 개론’(22일 개봉)의 이용주 감독이 “반성문을 쓰는 기분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고민하고 아파했던 그때의 우리들 속에 승민(엄태웅·이제훈)과 서연(한가인·수지)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시퍼런 스무 살과 함께 첫사랑을 맞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 최근 종영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훤(김수현)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연우, 한가인(30)이 이번엔 승민의 첫사랑 서연이 됐다. 19일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 출연은 7년 만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먹먹했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닌 10년, 20년 된 친구를 오랜만에 길에서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정말 좋은 멜로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기억의 습작’도 너무 좋아했던 노래였고, 실제 내 첫사랑도 대학 1학년 때였다. ”

 한가인은 2002년 데뷔했지만, 출연한 드라마는 10편이 되지 않는다.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두 번째다. 늘 ‘예쁜 배우’의 편에 있었지만, 대표작이라 꼽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다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대박이 났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다. 그는 “두 작품을 연이어 하게 된 게 운명 같다”며 서연과 연우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15년 만에 ‘집을 지어달라’며 첫사랑을 찾아가는 서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승민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남편과는 헤어진 데다, 기댈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고향인 제주도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도 막막했을 거다. 그때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던 승민이가 생각이 났을 거고. 그가 정말 건축 일을 하는지도 궁금했을 테지. 무엇보다 따뜻하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지 않았을까.”

‘건축학 개론’의 서연(한가인·왼쪽)과 승민(엄태웅).

-그렇다고 승민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 미안하지 않나(웃음). 사실, 은채(고준희)와 승민이랑 셋이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 촬영이 힘들었다. 승민한테 마음이 조금씩 가고 있는데, 그가 약혼자 은채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내가 헛다리 짚은 거잖아. 그게 되게 미안했다. 그들의 현실에 꼈다는 것 자체가.”

 -욕하는 장면이 화제였다.

 “내가 해서 다들 웃으신 것 같다. 의외성이 있으니까. 나도 찍으면서 재미있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해보겠나. (웃음) 서연이는, 내가 지금껏 해본 인물 중에 가장 나와 비슷해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연우는, 정말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여성이어서 초반에 힘들었다.”

 -‘해품달’은 초반에 연기 논란도 있었는데.

 “비난 일색이었다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비판’이라면 들어야 될 얘기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성숙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리면서도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

 -‘첫사랑’의 배우인 것 같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순수한 모습일까. 앞으로는 ‘한가인이 이런 걸 해?’하는 걸 해보고 싶다. 조폭 같은.” (웃음)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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