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개 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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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이 유명한 경구는 어떠한 일이건 세상사의 복잡한 변동이 가라앉은 시점을 기다려 세계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완성이 가능함을 뜻한다.

WTO, IMF 등 대내외적으로 변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경구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특히 통상 분야만 보더라도 세계의 발빠른 움직임은 우리의 신속한 대응을 요구한다. WTO에서의 사이버무역 논의, UN에서의 국제 전자상거래 표준 제정(CEFACT) 추진,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의 지적재산권 관련법령 개정 등 전세계 선진 각국은 사이버 통상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대회전을 치르고 있다.

과거 제조업 중심의 상품교역과 더불어 서비스, 문화, 물류, 유통 등을 포괄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을 표준화함으로써 아날로그 시대에 이어 디지털 시대의 패권을 움켜잡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시대적 대세를 반영하여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대외무역법 개정안은 세간의 많은 관심과 환영을 받고 있다. 이른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경제체제의 선진국가로 나서기 위해 전자무역(인터넷무역, 사이버무역, 무역자동화 등의 법적 통칭)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내년 3월 부터는 음악파일,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콘텐츠를 해외에 온라인으로 수출하는 기업도 대외무역법에 따른 수출기업으로 인정받아 무역금융이나 벤처지정, 병역지정업체 추천과 같은 수출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

또한 무역업계는 산업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전자무역중개기관’을 통해 전국 어디에서나 전자무역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정부 관계자의 표현대로 세계적으로 전자무역에 대한 정의 및 이에 대한 지원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전자무역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할 수 있게 된 이번 개정안 발표가 상당한 무게를 지닐 수 있다. 여기에 구체적인 시행령 제정에 앞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세밀히 검토되었으면 한다.

먼저, 전자무역 중개기관의 선정에 있어 공정성과 객관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정부나 각종 민간 단체들이 제각기 홈페이지 구축 작업에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수많은 예산과 비용을 들여 구축된 홈페이지가 오프라인 무역업무의 개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실정을 감안한다면 학연, 지연, 혈연을 동원하는 한국적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해 실제 무역업무의 전산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전자무역 중개기관의 선정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표준화와 관련된 문제다. 시스템 면에서 전자무역은 인터넷을 근간으로 한 계약 이전의 거래 알선 단계와 EDI를 중심으로 한 계약 이후의 서류절차를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단계로 대별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전세계적으로 은행, 보험, 물류, 통관 등 오프라인 업무의 전자적 처리를 위해 표준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전자의 경우는 단순 알선에 그치는 관계로 표준화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하게 들릴 정도다.

하지만 전자무역이 궁극적으로 원스톱 무역을 지향한다면 단순 알선을 넘어 저렴한 비용으로 실제 무역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향후 양자가 시스템적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통일된 인프라 구축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셋째는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문제다. 이번에 정부가 디지털 콘텐츠의 온라인 해외수출을 법적으로 인정한 만큼 관련 법규의 정비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만 보더라도 특허출원이 최근들어 증가하고 있어 이에 따른 분쟁이 빈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허청의 분석에 따르면 인터넷 관련 핵심기술 대부분이 외국기업에 집중돼 있어 올해 말부터 우리나라도 외국의 특허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제 21세기에는 지식이 강대국의 관건이 되고 있다. 흔히 국경 없는 전쟁터로 회자되는 사이버 세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우리 모두 중지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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