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락가락 입시제도에 멍드는 수험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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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고3을 비롯해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요즘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느끼는 심적인 부담과 고통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도를 지나치고 있다.

 각 대학들이 내놓은 올해 수시·정시모집 전형 계획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과 몇 개월 전 내놓은 입시계획과도 차이가 많다. 이러다 보니 현 정부 들어 대입 업무를 총괄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지난해 11월 각 대학들의 계획을 묶어 발표한 2013년 대입전형계획도 수험생·학부모에겐 혼란만 줄 뿐이다.

 대학의 이런 오락가락은 현행법과도 맞지 않는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33조에 따르면 각 대학 총장은 올해 수험생에게 해당하는 입시전형 계획을 신학기가 시작되기 3개월 전까지 공표해야 한다. 입시예고제다. 수험생들에게 안정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게 입법 취지다.

 대학을 감독하는 기관인 대교협이나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여기에 뭐라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 대교협과 교과부 역시 오락가락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 처음으로 수시모집에서 도입된 수험생들의 지원 횟수 6회 제한 역시 시행령 규정(32조)에 따라 지난해 7월 말 이전에 확정·발표됐어야 맞다. 그러나 대교협과 교과부는 4개월이나 늦은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정부 기관조차 입시예고제를 준수하지 않으니 대학이 이를 지킬 리 없다.

 대학들은 오히려 대교협과 교과부로 책임을 미룬다. 대학들은 ‘수시 지원 횟수 제한이란 변수 탓에 전형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구실일 뿐이다. 중앙대가 지난해 지원 횟수가 제한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간파하고 ‘통합전형’이란 방안을 내놓은 뒤 다른 대학들이 이를 뒤따르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통합전형이란 수험생이 자기 대학에 한 번만 지원하면 학교가 다양한 방식으로 전형해 뽑기에 학생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입시제도를 바꾸는 배경엔 이처럼 머릿수 쟁탈을 위한 꼼수가 숨어 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에 비해 수시모집 최저학력기준(수능 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대학들이 있는가 하면, 수능 이후에 봤던 논술고사를 수능 이전에 보는 대학도 생겨나고 있다. 진학지도를 맡은 학교들도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몰라 속을 태우고 있을 정도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사교육업체들이 “입시제도가 또 바뀐다”며 ‘불안 마케팅’을 벌여도 학생과 학부모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대학과 정부가 나서서 법을 지키지 않으니 ‘사교육 업계의 동업자’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대교협과 교과부는 이제라도 대학들의 입시 변경을 가급적 최소화할 수 있도록 먼저 모범을 보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책임 있는 기관이라면 더 이상 고3 수험생과 학부모를 괴롭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