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확 바꾸자] 5. 기본기부터 배우는 풍토 일궈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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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초등학교는 전국 토너먼트 대회를 없애고 주말 지역 리그를 벌이자. " (축구)

"중학교 때까지는 지역방어를 못하게 하고 대인방어만 하게 하자. " (농구)

"어렸을 때는 속공을 못하게 하고 오픈 스파이크만 하게 하자. " (배구)

"중학교 때까지는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야구)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걱정하는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공통점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기본기를 충실히 가르치자는 말이다. 잔재주부터 배운 선수들은 승부에는 강하지만 대성하기 힘들고 수명도 짧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지도자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잔재주를 가르치고 승부를 강조하는 것은 우승이 한국 초.중.고 운동부의 '존재 이유' 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예산을 들여 운동부를 운영하는 목적은 좋은 선수를 키우는 게 아니라 우승을 해서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목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우승' 이다.

기본기를 가르치는 지도자가 있다면 당장 해고다. 당연히 이 팀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자 중앙일보 독자투고란에 가슴 아픈 사연이 실렸다.

초등학교 축구경기 중 코치가 선수를 불러 주위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강이를 걷어차고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울면서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어린 선수를 보며 가슴 아팠다는 사연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어린 선수들이 기본기를 배우면서도 재미있는 축구를 하려면? 현재 학교 체육의 틀 속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프로팀들이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사설 클럽이긴 해도 '차범근 축구교실' 은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차범근 감독이 1989년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재를 털어 시작한 차범근 축구교실은 11년째를 맞으면서 차츰 그 열매를 맺고 있다.

선수는 아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 들이 주말마다 모여서 공을 차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즐기며 연습하고, 생각하며 경기한다' 는 축구의 기본 틀을 지킨다. 당장 선수가 돼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성적을 올려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공을 차는 그 자체가 즐겁다. 착실하게 기본기 교육을 받는다.

이곳 출신들이 신용산초등학교 선수가 됐고, 용강중 선수가 됐다.

중학 축구를 제패한 용강중 출신들을 받아 중경고 축구팀이 창단됐고, 지난해 또 고등부 우승을 차지했다. 내년에는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을 주축으로 여의도고 축구부도 창단된다.

이들에게는 합숙이나 체벌이나 구타가 없다. 선수들은 정식 수업을 다 마친 후 오후 3시 이후에 훈련을 한다. 고등학교도 정식으로 연합고사를 보고 입학했다. 그러고도 우승한다.

이 정도면 훌륭한 '대안' 이 아닌가.

대안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다 보니 알고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2002년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기본기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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