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이하 저축률 하락] '더 추운 겨울' 예고

중앙일보

입력

중산층 이하 도시근로자 가정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소득은 외환위기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는 데도 과소비 풍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소비가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지난해부터 아예 가계부가 '적자' 로 돌아 시간이 흐를수록 빚이 늘어가는 양상이다.

더욱이 경기가 하반기 들어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어 중산층 이하 가구에는 올 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 추락하는 중산층 도시가구=외환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은 중산층 이하 근로자 가구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고소득층의 소득은 전년에 비해 2.8% 줄었지만 중산층은 11.8%, 저소득층은 17%나 감소했다.

그러나 이들은 환란 직후 금부치까지 내놓으면서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씀씀이를 소득보다 줄여 저축을 했다. 중산층의 경우 98년 27%의 높은 저축률을 기록했고, 저소득층도 9.1%의 저축률을 유지했다.

그러나 주식시장 활황과 산업 생산 호조로 경기가 풀린 지난해부터 고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의 씀씀이까지 헤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소득층은 14%, 중산층이 13.7%의 높은 소비증가율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엔 중산층의 소비증가율(13.3%)이 고소득층(12%)보다 오히려 높았다.

중산층의 소비행태를 보면 식료품.주거비.광열비 등 필수적 소비보다 통신.교양.오락비 등 줄이려면 줄일 수 있는 소비(선택적 소비)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중산층의 가계부 사정이 나빠진 데는 소득이 외환위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고소득층의 과시적 소비행태가 이들에게도 일부 전염됐기 때문이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실제로 올들어 9월까지 소비재 수입을 보면 승용차.모피.골프용품 등 부유층의 전유물뿐 아니라 TV(증가율 2백34.6%).VCR(2백74.1%).음향기기(74.9%) 등 중산층이 소비하는 일반 가전제품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 저소득층 사정은 더욱 악화=중산층이 소비증가율이 높아 저축률이 떨어졌다면 저소득층은 기본적으로 소득이 적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소득이 외환위기 이전(97년 상반기)보다 5.7% 줄어든 수준에 그치는 등 '벌이' 가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83년 저축률 2%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상승, 92년엔 10.5%의 높은 저축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소득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데다 회복 속도도 늦어 고소득층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특히 83년 이후 소폭이지만 흑자를 기록했던 저소득층의 가계수지가 지난해 이후 적자로 반전된 것은 상당한 사회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한은 이긍희 조사역은 "앞으로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 저소득층의 가계수지가 더 악화될 게 분명하다" 며 "물가.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안정시켜 이들의 소비 부담을 줄이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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