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엿집을 삶과 죽음 명상 공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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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오른쪽)씨가 10일 경산 상엿집을 살펴보고 있다. [경산=프리랜서 공정식]

“상엿집을 주제로, 결국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공간을 지어야겠지요. 이곳에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는 명상의 공간은 꼭 필요합니다.”

 건축가 승효상(60·이로재 대표)씨가 10일 경북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 중턱에 있는 상엿집(마을의 공동 상여를 보관하는 집)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이다.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지부장 황영례)가 3년 전 영천의 한 마을에 흉물로 남아있던 것을 사들여 2010년 국가중요민속자료(제266호)로 탈바꿈시킨 상엿집이다.

 국학연구소는 이후 사라져가는 상엿집 두 채와 사당 한 채를 더 구해 상례문화관 조성을 추진하면서 지난 1월 초 일면식도 없던 승씨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우리 조상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죽음의 문화를 되살리는 일에 한 수 가르침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승씨는 이 연구소 조원경(55·철학박사) 고문의 간절한 전화에 “한 번 내려가 보겠다”고 대답했다. 1월 중순 무학산을 첫 방문한 승씨는 상엿집과 주변 지형을 살피고 국학연구소의 열정을 확인한 뒤 “설계를 맡겠다”고 약속했다. 설계비에 대해서도 그는 “돈 걱정은 너무 하지 말라”고 말했다. 국학연구소는 내친김에 그를 월례 특강의 강사로 초청했다. 승씨는 그 요청도 받아들여 이날 회원들에게 자신의 건축관과 상례문화관에 대한 구상을 설명했다.

 승씨는 “우리 문화는 본래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있었다”며 “죽음의 공간이 같이 있어야 삶이 경건해진다”고 말했다. 서양의 건축문화에 밀려났지만 조상의 위패를 모시던 집 안 사당이 그런 공간이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건축 공부가 벽에 부닥칠 때면 언제나 찾는 곳이 서울의 종묘라고 했다. 특히 두께가 얇고 넓직한 박석이 깔린 곳을 가장 좋아한다. 승씨는 종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김해 봉하마을에 들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국민 성금으로 애도하는 마음을 새긴 묘역 바닥 돌은 박석에서 따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상엿집을 통해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는 그런 공간을 지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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