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국민의 방송과는 거리 먼 행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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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호 04면

방송사 파업에 대해 언론학 교수들의 입장을 듣는 건 쉽지 않았다. 몇몇 교수는 “이렇게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며 코멘트를 거절했다. 교수들의 이 같은 반응은 현재 진행 중인 방송사 파업의 성격상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형식적으론 노사 갈등이지만 사실은 정치 쟁점이 돼버렸기 때문이다.서울대 언론정보학 윤석민(사진) 교수는 “방송사 파업은 보도의 공정성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념 대립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방송사 노사 어느 쪽도 국민의 방송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

-방송 3사가 합동파업 중이다. 이명박 정부와 방송사 노조의 갈등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이념과 성향 차이가 크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정권과 방송사 노조가 생각하는 게 비슷하니 큰 문제가 없었다. 이명박(MB) 정부는 다르다. MB 정부의 기조인 실용정책이 공공 부문과 충돌을 크게 일으켰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방송저널리즘 영역이었다. KBS2나 MBC 민영화 논의부터 종편 허용, 미디어렙 문제 등 철학부터 소위 ‘밥그릇’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이 연일 도전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현 정부 하에서 실제로 보도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보는지.
“정부에 불리한 내용을 내보내지 않는 행태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MBC나 KBS, YTN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사장 임명 과정부터 권력과 독립돼 있지 않은 게 문제다. 그런 사장이 불공정하게 인사를 하고, 결국 편파·왜곡 보도 시비가 벌어졌을 거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근본 원인은 공정성 훼손도 있지만 이념 대립의 심화라고 본다. MB 정부 들어서 신문도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대립 구도가 극심해졌다. 방송사는 내부에서 노조와 친(親)사장 세력으로 나누어져 사사건건 싸운다. 양쪽 다 잘못이 있다. 어느 쪽도 ‘국민의 방송’이라고는 할 수 없다.”

-총선을 앞둔 ‘정치파업’ 지적도 있는데.
“정치파업이 맞다고 본다. 그게 방송사 노조의 큰 문제다. 그들은 이익집단이다. 이념지향성도 강하다. MBC 노조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방송 민주화의 주도세력이었다. 그때 이룬 가치는 인정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급속히 이익·이념 집단화됐다. 노조가 인사와 경영에 영향력을 갖는다는 건 상식 밖이다. 엄기영 사장, 최문순 사장 때는 편파성 논란이 없었나. 미디어법 통과 때는 3사 공히 메인 뉴스에 노골적으로 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도를 했다. KBS도 정연주 사장 때 편파보도 논란이 있었다.”

-방송사 노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인가.
“MBC는 지금 크나큰 위기다. 지상파 방송이 독과점하던 시절엔 사실 얼마나 편했나. 가만히 있어도 광고가 들어오고 시청률이 유지됐다. 경쟁자가 없으니 타성에 젖었다. 방송산업이 격변하는지 알지 못한 채 노조 목소리만 큰 비생산적인 이념집단이 됐다. 저기능 상태에 빠진 거다. 일반 기업의 경우 그대로 놔두면 망한다. 그런데 MBC는 국민의 소중한 자산인 공영방송 아닌가. 망하게 내버려둘 수 없으니 안타깝다.”

-김재철 MBC 사장의 문제는 뭔가.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갖춰야 할 철학과 식견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 장악에도 완전히 실패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사람 쓰는 수준을 보여준 거라고 본다.”

-'낙하산 사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생하는 문제인데 해결책이 없는 건가.
“KBS는 이사회, MBC는 (70% 지분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두 이사회 모두 이사를 방송통신위원회에가 정한다.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지만, 결국 정치적 지배구조를 반영한 결과가 된다. 독일의 경우 ARD와 ZDF 두 공영방송 사장은 독립기관인 방송위원회에서 뽑는다. 위원회엔 우리처럼 여야 인사만 참여하는 게 아니다. 사회단체·직능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구성하고 수도 많다.”

-선진국 공영방송에선 ‘관제 사장’ 시비가 없다는 얘긴가.
“가령 영국 BBC도 노동당 정부 하에선 노동당 쪽과 가까운 인사가 사장으로 임명된다. 임명 후에는 사장들 대부분이 정권과 거리를 두려 스스로 노력한다는 게 다르다. 전 세계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는 자부심은 그런 데서 나오는 거다. 우리는 방송사 내부에서 커온 기자 출신이 사장이 돼도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방송사 경영보단 ‘사장 이후’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수장쯤 되면 권력 눈치 볼 게 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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