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코스닥 떠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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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을 코스닥 시장에서 몰아내 더 큰 시장으로 나가라고 하고 벤처기업 등록이 쉽도록 각종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 회사의 가치와 주가는 시장이 결정하게 하자.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게 하여도 시장이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IMF 위기? 닷컴 위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 원인과 해결책들이 무수히 회자되었다. 실무에 가장 깊숙이 관여해온 금융인 그리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무리한 해외 유가증권 투자와 망해가던 재벌 그룹들의 꿈도 야무진 해외 프로젝트들에 끌려다니며 달러를 대주던 한국의 금융기관들. 달러를 빌려주던 외국 금융기관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이게 아닌데!” 하며 한국은행과 정부 당국에 수많은 질의서를 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듣는 자신 있는 목소리. 한국 정부는 절대 한국 금융기관을 망하게 하지 않고 30대 재벌도 망하게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 금융기관에게 빌려줄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오는 외국 금융기관들의 질문에 얼마나 있는지조차 아는 정책 당국자들은 거의 없었고 까놓고 보니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한보와 기아가 부도나면서 국가의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다.

너도 나도 이리 떼처럼 달려들어 자금 회수에 들어갈 때 백기 들고 IMF 찾아가서 구제금융 받던 때가 3년 전의 일이다. IMF 위기가 아니라 구원이다. 실은 시간을 조금 번 것뿐이다. 정부 당국에 대한 신뢰도 회복, 금융기관의 건전한 자산 및 부채 운용, 대기업 구조 조정 등의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신정부는 그 숙제를 잘 하기 위한 기틀은 잘 짰다고 본다. 특히,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후유증을 없애고, 산업기반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벤처 기업 육성에 힘을 썼던 적이 있다.

때를 맞추어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인터넷 열풍은 큰 힘이 되었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에서는 수많은 인터넷과 정보통신 업체들이 생겨나며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기업을 박차고 나왔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들이 수없이 탄생하였고 많은 젊은 부자들이 생겨났다. 대기업은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인터넷 벤처 기업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나라 전체에 탄력이 붙었고 활기가 넘쳐 났다. 빠른 시간 내에 한국은 정보통신의 최첨단 분야인 인터넷 산업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닷컴 구원’인 셈이다.

물론, 그동안 부작용도 많았다. 인터넷 벤처 투자가 돈 있는 사람들의 투기 수단이 되기도 했고 무늬만 벤처인 회사도 수없이 생겨났다.

인터넷 벤처 기업들은 수익모델이 없어 돈을 못 벌어들일 것이고, 이로 인해 대부분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유일한 투자 회수 창구인 코스닥시장은 대기업들의 무차별 진입과 수없이 많은 규정과 제한 사항들 때문에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제2의 IMF 위기론도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다. 정책 당국은 못다한 숙제를 해주었으면 한다. 벤처 기업의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테헤란로에 나와 보시라. 돈놀이 하는 사람 별로 없고, 밤새 불을 밝히고 열심히 기술 개발과 신사업 모델 개발에 땀 흘리는 우수한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인터넷은 미래의 생활 기반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어떤 기업이든 초기 1,2년간은 돈 잘 못 번다. 인터넷 업체만의 일이 아니다.

이제 대기업들을 코스닥시장에서 몰아내어 더 큰 시장으로 나가라고 하고 벤처기업 등록이 쉽도록 각종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

회사의 가치와 주가는 시장이 결정하게 하자.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게 해도 시장이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정책 당국은 공시 의무나 내부자 거래 방지 등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한 룰을 만들어 주고 관전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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