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IT 경쟁력 높이는 아날로그 감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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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전시장을 방문했다. 세계 정보기술(IT)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글로벌 IT기업들은 이제 각자 자기의 강점에 초점을 맞춰 특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구글의 오픈 플랫폼인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신제품 스마트폰만 80여 개에 달했다. 구글 직원들은 근무시간의 20%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쓸 수 있다. 이를 통해 G-메일 등 여러 가지 서비스를 만들어 냈다. 이번 MWC에서도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을 이용해 명함을 터치하면 연락처 등이 휴대전화에 저장되는 앱을 하루 만에 개발해 선보이기도 했다. NEC는 손동작만으로 파일을 다른 단말기로 옮길 수 있는 인체행동인식 기술을 보여줬다.

 전반적으로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적 감성과 접목되는 경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이런 융합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과 LG가 필기 기능을 장착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선보인 것이다. 과거 한 글자씩 정성껏 꾹꾹 눌러쓰던 연애편지의 두근거림, 빼곡히 정리해서 돌려보던 강의 노트 등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이런 기기들은 IT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한 것이다. 그간 기기 자체에서만 강점을 찾아내려고 했던 우리 대표 IT기업의 대단한 발전이며, 새로운 도전이다.

 기술경제학에서는 기술발전 초기에는 새로운 기술이 수요를 만들어 내지만(technology-push), 점차 수요가 기술을 만들어 내고 기술은 수요에 맞추어 발전하고 진화하는(demand-pull) 것으로 본다. 풀어 말하면,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제품이 널리 확산될수록 성능 자체보다는 수요자의 선호에 부합하는 기술과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한국 기업의 새로운 시도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디지털 기기에 반영하기를 원하는 수요자의 요구를 선구자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IT제품도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인류가 개발한 것은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즉, 인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만이 경쟁력 있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의 재등장은 유난히 정이 많고 감성적인 우리 민족에게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유난히 풍부한 아날로그적 감성은 우리 IT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제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인간 감성이 첨단 기기에 결합되는 새로운 IT시대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과거 우리 정부는 광대역통신망과 같은 인프라 구축을 주도함으로써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IT 기업들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우리가 벤치마킹할 대상도 거의 없고 우리 스스로 혁신을 이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개개인의 창의성과 감성이 새로운 혁신의 중요한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시장과 산업을 재단하거나 간섭하는 기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IT 융합이 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콘텐트 등 미래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불필요한 규제, 국내에만 있고 해외에는 없는 규제들을 과감히 풀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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