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상보육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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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선임기자

서울의 어린이집은 6227곳, 이 중 국·공립은 670곳이다. 서울보육포털에 따르면 7일 현재 대기자가 1000명이 넘는 국·공립시설은 102곳이다. 서울 강남의 한 어린이집은 대기자가 4103명. 현재 다니는 아동(156명)의 26배다. 지금 태어난 애를 신청해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12월 여야가 예산심의 과정에서 0~2세 무상보육을 끼워 넣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집에서 키우던 13만 명의 애들이 어린이집에 들어가겠다고 나왔다. 공짜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무상보육은 지난해 초 민주당에서 출발했고 8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불을 붙였다. 그 이후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다가 12월 국회에서 확정됐다. 당시 민주당 주승용 의원 정도만 “0~2세는 덜 급하다. 3~4세가 급하지”라고 우려했다.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0~5세 국가 책임 보육” 발언 탓인지 반대하지 않았다. 박재완 장관은 “수많은 대안을 두고 전문가들과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지원금 지급이 불필요한 수요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거나 모른 체했다. ‘개념 없는 복지 확대’의 주연은 정치권, 조연은 정부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게 사람 심리다. 올해부터는 어린이집이 공짜(0~2세)라고 하니 집에서 애 키우는 부모들이 반발했다. 소득 하위 70%를 지원 대상이라고 하니 상위 30% 계층(3~4세) 부모들이 불만이다. 결국 한 달도 안 돼 “집에서 애 키우는 부모에게도 지원금을 준다. 3~4세는 전면 무상보육”이라고 발표했다.

 선심이 선심을 부르고, 필요한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애초에 ‘양육수당 확대’에서 ‘3~4세 무상보육’ 순서로 먼저 시행한 다음, 정 필요하다면 ‘0~2세 무상보육’을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으로 갔어야 맞다. 그럴 경우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가고, 부작용도 지금처럼 크진 않았을 게다.

 가장 큰 문제는 너도나도 혜택을 보겠다고 몰리는 현상이다. 서울 광진구의 한 어린이집(어린이 17명 이용) 원장은 “최근 전업주부 신청자가 50~60% 늘었다”고 말한다. 당혹한 정부가 양육수당 확대, 즉 집에서 키우는 경우 현금을 지원하는 시기를 올 하반기로 당겨 어린이집으로 몰리는 수요를 줄이려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럴 경우 당초에 없던 예산 6500억원을 추가로 쏟아 부어야 한다.

 한국이 복지 투자가 적은 것도 사실이고, 더 늘려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원칙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인기영합주의로 흐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