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여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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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27면

오래전 한 성당에서 사목을 할 때다. 오전에 성당 구역에서 모임이 있어 사제관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저편으로 떨리는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성당에 다니는 중학교 2학년생이라고 했다. 그 소녀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말을 꺼냈다. “신부님! 제가 조금 힘들어서요. 부모님 사이가 너무 안 좋아 가출을 했어요. 이틀 동안 친구 집에 머물렀는데 더 이상 있기가 불편해요.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려는데… 신부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전화를 받으면서도 연신 시계를 보며 혹여 모임에 늦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삶과 믿음

“지금은 내가 구역 모임이 있어서 만나기 힘들고, 몇 시간 후 성당으로 오면 안 되겠니?”

“성당에 가면 부모님 눈에 띌 수 있어서 싫어요.”

“그러면 네 시간 후 다시 전화를 주렴. 그때 이야기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다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가 된다. 얼마나 다급한 일이었으면 전화를 했을까. 무조건 그 시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그 후 그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지금은 서른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 만약 그 소녀가 지금 이 글을 읽는다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

사람들은 원한다.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 말이다. 우리는 매일 많은 말을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비어 있는 것처럼 허전할 때가 많다. 시끌벅적한 모임 후에는 특히 더 그렇다. 인간은 항상 ‘나’를 상대해 줄 ‘너’를 원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의 소외감도 비례해 늘어난다.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는 오히려 인간을 더 소외시킨다. 진정한 대화는 어떤 정보나 사실을 교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견과 감정도 전달하고 교환해야 한다. 대화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인간관계가 잘 맺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감정적·정서적 교류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족 간에 대화를 많이 하면 자녀의 인지 능력이 향상되고 학업 성적도 높아지며, 자녀의 탈선 빈도도 낮아진다고 한다. 또한 청소년 문제의 상당 부분을 외부 도움 없이 가정의 대화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짧은 시간이나마 자녀와 꾸준히 대화를 이어 가는 노력이야말로 자녀 교육의 첩경이라 할 수 있겠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 입장이 돼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대화는 한 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양쪽이 같이 소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에 실패하는 것은 한쪽으로만 가는 일방통행식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오늘날 대화가 어렵고 소통이 잘 안 된다고 안타까워한다. 이는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까닭일 것이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 얘기를 경청하면서 진정한 대화를 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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