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봉숭아학당’ 정개특위의 테트리스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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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화 ‘300’은 스파르타 정예 요원 300명의 명예로운 죽음을 그린 영화다. 300이란 명예로운 숫자가 27일 국회에선 코미디 소재가 돼버렸다.

 국회 우윤근(민주통합당) 법사위원장은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자마자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법안이 있어 맨 먼저 처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원래 국회의원 정족수를 300명으로 늘리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법사위의 ‘의안 순번 106번’이었다. 우 위원장이 말한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법안’은 의안 순번 106번째 선거법 개정안이었다. 그런 법사위는 ‘일반약 편의점 판매’를 담은 약사법 개정안(안건 순서 76번) 같은 민생법안은 처리하지 못했다. 정족수 미달 때문이었다.

 이 법안은 오후 6시 열린 본회의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았다. 사회를 맡은 홍재형(민주통합당) 국회부의장은 “순서와 관계없이 정리가 완료된 안건부터 상정한다”며 우선 표결에 부쳤고, 결국 통과됐다.

 앞서 정개특위에선 ‘봉숭아학당’ 같은 모습도 연출됐다.

 경북 상주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성윤환 의원이 “남해-하동을 없애는 건 농촌 지역구에 대한 편파적 조치”라고 지적하자 같은 당 주성영 의원이 “남해-하동을 (없애자고) 추천해놓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인간이 돼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300명으로 국회의원을 증원하기 위한 각본을 매우 치밀하게 짠 듯하다.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00석’ 중재안을 내놓자 민주통합당은 이날 오전까지도 “증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며칠 전부터 새누리당과 300명 증원안에 잠정 합의했다는 얘기가 국회 주변에서 흘러나왔는데도 말이다. 앞장서 비난을 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꼼수였다.

 새누리당 주성영 정개특위 간사는 “향후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준의결기관화하겠다”고 밝혔다. 19대 국회에선 잘해보겠다는 얘기인데, 18대 마지막 국회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의원들이 19대 국회에서라고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새누리당 이범관 의원은 이런 성명서를 냈다.

 “테트리스식 선거구 획정은 코미디다. 정개특위는 개그콘서트, 국회는 KBS별관이다.”

 테트리스는 각기 다른 모양의 7가지 블록을 꿰어맞추는 게임이다. 경기 여주-이천이 지역구인 이 의원은 여주가 양평-가평과 통합되면서 지역구 일부를 내놓게 되자 이같이 반발했다. 하지만 300석으로 지역구를 늘리기 위해 이리 떼고, 저리 붙인 선거구 획정은 ‘테트리스 게임’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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