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중고차로 되팔린다

중앙일보

입력

주부 金모(53.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지난 7일 "당신 차가 사고를 내고 뺑소니쳤으니 경찰서로 나오라" 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뺑소니쳤다는 차는 1주일 전 추돌 사고를 당해 보험사 직원을 통해 폐차한 것이었다. 경찰수사 결과 폐차된 줄로 믿었던 차가 정비소를 거쳐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구입자가 명의이전을 안해 고스란히 배상 책임을 떠안았다.

대학생 金모(21.서울 성북구 돈암동)씨는 이달 초 중고차 시장에서 구입한 차가 주행중 엔진이 자주 꺼져 곤혹을 치르다 매매상을 통해 원주인을 찾아 보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원주인은 "폐차한 차를 어떻게 구입했느냐" 고 되물었다. 이 차도 브로커를 통해 폐차장으로 가지 않고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폐차장으로 보낸 차가 중고차로 둔갑해 거래되고 있다. 사고차 소유주나 새 차를 구입한 고객으로부터 폐차를 부탁받은 차량을 중간에 있는 인사들이 싼 값에 정비, 중고차 매매시장에 팔아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 차량은 불량 정비로 사고의 위험도 크고 소유권 이전등기가 제대로 안돼 각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S생명보험 Y영업소 金모(56)씨는 "시간에 쫓기는 고객을 위해 폐차를 대행해 주겠다며 자동차등록증과 인감증명을 달라면 의심없이 건네준다" 고 말했다.

그는 "아는 정비소를 통해 수리한 뒤 매매하면 대당 50만원쯤 차익을 얻을 수 있어 직원들 사이에 폐차의 중고차 전환이 부수입거리로 유행하고 있다" 고 털어놨다.

올들어 8월까지 거래된 중고차는 전국에서 14만8천6백21대. 몽골.중국.러시아 등으로 수출된 15만6천여대까지 합하면 총 30만대 이상이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 가운데 20~30%가 소유주들은 폐차한 것으로 아는 재생 중고차들" 이라며 "생활정보지를 통한 개인간 거래까지 합치면 그 대수는 훨씬 많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들 재생 중고차는 싸구려로 정비돼 안전에 문제가 많다.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의 한 정비업자는 "보험사 직원들의 부탁으로 폐차 직전의 차량을 중고차로 둔갑시키는데 정비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순정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 폐차영업소 나준재 이사는 "대리인에게 위임하지 말고 번거로워도 자신이 폐차하는 게 곤혹스런 후유증을 피하는 길" 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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