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여성 '인종넘은 사랑' 신장기증…한인소년 살렸다

미주중앙

입력

신장을 준 트레샤 클로와키씨와 신장을 받은 최승준 군. 곧 신장 기증 1주년을 맞는 두 사람은 떨어질 줄을 모르며 `가족의 눈빛`을 주고 받았다.

지난 21일 텍사스주 댈러스 최승준군의 집. 신장을 받은 15세 승준이와 신장을 준 50대 트레샤 클로와키 씨가 만났다. 15일만 지나면 신장 이식 수술 1주년이다. 두 사람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떨어지지 않는다. 둘은 수술 이후 1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 '가족의 눈빛'을 주고 받던 터였다. 트레샤가 먼저 이식 수술 '한 달' '두 달' '100일' '200일'을 기념일처럼 챙겼다.

이들의 인연은 2010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준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그 해 6월 콩팥 두 개를 떼어내고 하룻밤에 10시간 동안 투석을 받았다. 가장 힘든 것은 가려움증. 살점이 떨어져 피가 흐를 때까지 긁어도 가려웠다. 힘껏 뛰지도 맘대로 먹지도 못했다. 13살짜리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투병 10년째 가족의 가슴은 멍투성이였다.

승준이에게 손을 내민 것은 신장 기부 운동을 하는 '테일러 재단'. 13살에 스키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장기 기증으로 여러 생명을 구한 테일러 스톨치라는 소년이 있었다. '테일러 재단'은 이 소년의 아버지가 만든 재단이다. 토드 스톨치 이사장이 승준이를 찾아 왔을 때 트레샤가 함께 나타났다. 트레샤는 승준이 이웃에게서 승준이 얘기를 들었다.

12월 트레샤는 승준이 가족 몰래 이식 검진을 받았다. 다음해 1월 27일 이식 가능 판정이 나왔다. 승준이와 가족은 이식자가 이미 알고 있는 트레샤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식은 트레샤가 더 서둘렀다. 하루라도 빨리 건강한 승준이를 보고 싶어했다. "수술이 두렵지 않았나요?"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렵지 신장을 하나 떼어주는 것은 하나도 겁나지 않았어요." 트레샤는 네 아이의 엄마로 얼마 전 손녀를 얻은 할머니다.

수술은 두 곳에서 진행됐다. 트레샤의 신장을 떼는 수술은 사우스웨스턴 병원에서 승준이의 이식수술은 댈러스 칠드런 메디컬 센터에서 진행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트레샤는 수술 이틀만에 승준이를 찾아왔다. 승준이의 상태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수술 뒤 통증이 극심했어요. 하지만 승준이를 보는 순간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어요. 산통을 참고 낳은 아이를 처음 안아봤을 때의 느낌과 같았어요."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이다. "승준이는 내 아들이자 친구죠. 볼 때마다 조건 없는 사랑이 떠올라요." "트레샤는 항상 나를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에요. 어떨 때는 엄마 같아요."

트레샤는 승준이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 그리고 행복해지는 것을 바랄 뿐이다. "남을 돕고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트레샤의 소망 때문일까? 승준이의 꿈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요리사가 꿈이었지만 이젠 의사가 되고 싶다. "저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둘은 벌써 신장병 환자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아칸소에서 열린 '미국신장병환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Kidney Patients)' 회의에 참석해 환자와 그 가족 700여명 앞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승준이의 얘기를 듣고 눈시울을 적셨다.

승준이의 일상은 180도 바뀌었다. “많이 편해졌어요. 너무 좋아요.” 이제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고 영화도 보러 간다. 천방지축 15세로 돌아온 것. 엄마가 잔소리를 해야 할 정도다.

김순주 씨는 “투병 중에는 마음 아플 정도로 철이 들었었는데 이제 부모 말을 잘 안듣는 평범한 아이로 돌아왔다”며 “건강한 것만 봐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승준이가 어떻게 될까봐 항상 불안했어요. 승준이가 투석할 때는 거실에서 쪽잠을 잤어요.” 그녀는 성당을 갈 때마다 촛불을 켜고 두 사람의 건강을 기도한다. 아버지 최종형 씨는 “이게 몇 년 만의 평화인지 모르겠다”며 “트레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텍사스 지사=함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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