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탐구] 고재호 대우조선 CEO 내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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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남상태(62) 사장 후임으로 대우조선해양 최고경영자(CEO)에 내정된 고재호(57·사진) 부사장은 대우그룹 공채 출신이다. 30여 년을 오롯이 대우에만 몸담았다. 지난 24일 채권단과 이사들이 모인 대표이사 추천협의회에서 단독 추천된 고 부사장은 다음 달 5일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후보로 공식 선정돼 같은 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그는 2015년 3월까지 대우조선해양을 지휘하게 된다.

 남 사장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통’이었다면 1980년 입사한 고 부사장은 글로벌 시장이 인정하는 ‘글로벌 영업통’이다. 입사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선박·해양 영업 분야에서 근무하며 ‘영업 내공’을 쌓았다. 노조원들이 극렬 저항한 87년에는 후일 대우그룹 회장까지 지낸 윤영석 당시 사장의 비서를 맡아 노사 문제에도 눈을 떴다. 2004년부터 2년간 인사총무 임원을 맡으면서 매끄러운 노사관계를 다지는 데 한몫했다. 회사 전반에 대한 경영 노하우는 2005년부터 2년간 KAIST 경영대학에서 ‘이그제큐티브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익혔다.

  영업본부 시절 명쾌한 논리와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지켜본 임원들이 90년대 초반 차장이던 고 부사장을 런던지사장으로 발탁했다. 파격이었다.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본사에서 출장 가는 임원을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런던시내 지리와 오른쪽 운전석에 익숙지 않았던 고 부사장은 일과를 마친 뒤부터 새벽녘까지 혼자 차를 몰고 다니며 시내 지리를 외웠다. 이 스토리는 지금도 영업본부의 전설로 통한다.

 2009년에도 그의 뚝심과 신의성실이 통했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유럽 경제가 흔들리면서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건조를 맡긴 유럽 선주들의 계약 취소 문의가 잇따랐다.

당시 책임임원이던 고 부사장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100억 달러 이상의 계약 취소사태가 벌어져 대우조선해양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였다. 만약 고 부사장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주의 계약을 취소해 주면 다른 선주들까지 계약을 무효로 해 달라고 떼를 쓸 판이었다. 그러나 고 부사장은 중심을 잡고 한 건의 계약 취소도 받아 주지 않았다. 대신 더 좋은 조건의 선박대금 조건을 내세우거나 선박 건조일을 늦춰 주는 등의 융통성을 발휘했다.

 오랜 기간 유럽의 부자들과 어울리면서 와인에 대해서는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거제도 조선소에 유럽 선주가 좋아하는 와인이 없으면 서울에서 공수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KAIST 경영대학 배보경 교수는 “다양한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상황에 맞는 와인을 고르는 솜씨가 일품”이라며 “그런 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를 저절로 따르게 만드는 리더십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아프리카 선주와 왕족들이 ‘JH 코’를 찾는 배경이다. 지난 5년간 남 사장과 호흡을 맞춰 온 고 부사장은 남 사장의 경영방식을 유지하면서 보다 견고한 수익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선박 대금  일반적으로 벌크선과 같이 간단한 구조의 배는 건조하는 데 12∼15개월이 걸리고, 해양플랜트와 LNG선과 같이 복잡한 배는 완성하기까지 18∼20개월 정도 소요된다. 보통 배를 계약하면 5∼6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금으로 내고 5∼6회에 걸쳐 분할 지급하게 된다. 배를 인도할 때 대금을 완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선주들은 선가의 20%를 자기 돈으로 내고 나머지는 선박금융으로 융통한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당시 유럽의 선주들은 자금이 돌지 않자 무조건적인 계약 해지를 요구해 많은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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