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에 꽃등잔을 띄우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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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 27면

여행이란 꼭 필요한 것만 골라 싸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번 목적지는 부처님의 나라 인도였다. 벼르고 별러 나선 탓에 성지순례에 필요한 것은 따로 챙겨야 했다. 그리고 한국의 추위와 인도의 더위를 동시에 겪어야 하는지라 챙겨야 할 짐이 더 많았다. 어쨌거나 가방은 민망할 정도로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한 꾸러미로 줄이는 데 성공한 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삶과 믿음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공항에서 추가로 짐이 늘어난 것이다. 011 옛 번호를 고수하고 있는 대가로 투박한 디자인의 두툼한 로밍 전화기 한 대를 더 빌려야 했다. 어찌어찌 구겨서 겨우 집어넣었다. 그렇다고 기존 전화기를 버리고 갈 수도 없었다. 연락 올 때마다 누구인지 알기 위해 번호 검색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이런 이중불편을 감수하면서도 2G인 옛 번호를 고집하는 것은 이미 내 번호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에 대한 배려라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통화와 문자 외 별다른 추가 기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삐삐를 고집하는 사람들보다는 한 수 아래이긴 하지만. 신문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빨리 받아들여 편리하게 이용하는 얼리어답터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은 이런 문화지체 현상을 보이는 나를 향해 ‘국가 IT정책에 반하는 매국노 짓 그만하고 빨리 010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그 잔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다시 들려왔다.

그 순간 여분으로 마련해 둔 카메라용 메모리와 전지를 제대로 챙겼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긴가민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항 면세점에서 추가로 구입했다. 작지만 또 짐이 늘었다. 한 가마니 위에 보태지는 것은 설사 한 홉일지라도 무거운 법이다. 첫 기착지 바라나시에서 여장을 풀고 충전을 하려는데, 두고 온 줄 알았던 그 물건이 가방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여명의 강변은 힌두교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붐볐다. 부처님께서도 새벽마다 강물에 얼굴을 씻고서 바라나시 강변을 자주 산책하셨다. 금강경에 몇 번씩 반복되며 나오는 ‘매우 많다’는 뜻의 항하사(갠지스) 모래는 무척 부드럽고 가늘었다. 강은 수중보궁(寶宮)이었다. 1794년 지방장관인 자가트 싱(Jagat Singh)은 석재와 적벽돌이 필요해 인근 사슴동산의 거대한 스투파(탑)를 해체해 썼다. 그 과정에서 노출된 부처님 사리를 갠지스 강에 버린 이후 이곳은 불교성지까지 겸하게 되었다. 겹 성지는 세계종교사에 더러 있는 일이다. 꽃등잔을 강물에 띄워 보내며 인도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지구촌의 ‘종교 간 평화’를 함께 기원했다.

소와 개까지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바라나시 거리는 볼거리의 연속이었다. 2600여 년 전 당신께서 만났던 ‘생로병사의 고통’이라는 잊고 있었던 불편한 현실을 곳곳에서 마주쳐야만 했다. 여인네들이 두르고 있는 ‘바라나시 산(産) 전통 실크사리’의 화사함만이 칙칙하고 혼돈스러운 도시 분위기를 그나마 일정 부분 상쇄시켜 주었다.

마지막 전지로 교체하면서 새삼 ‘건망증도 쓸 데가 있네’ 하며 혼자 웃었다. 세 개의 건전지 덕에 종일토록 진풍경을 맘껏 담아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무겁게 지고 온 임대전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게 문자전송이 전혀 되지 않아 별반 소용이 없었다. 세상만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원철 한문 경전 연구 및 번역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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