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아버지, 수화 없어도 당신의 사랑 잘 들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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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버지의 손
마이런 얼버그 지음
송제훈 옮김, 연암서가
336쪽, 1만3000원

그의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한쪽 발은 듣지 못하는 부모의 침묵의 세계에, 다른 한 발은 듣는 이들의 더 큰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미국 아동문학가 마이런 얼버그(79)의 유년기에 대한 회상이다.

 얼버그는 1940년대 뉴욕 브루클린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 손에 자랐다. 간질을 앓는 동생도 함께였다. 말을 배우고부터 듣지 못하는 부모를 위해 수화 통역사를,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동생을 위해 간호사 노릇을 해야 했다.

 해서 이 책은 들리는 세계와 그렇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 손으로 말을 했던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고, 부족한 말 이상으로 손과 눈과 몸으로 사랑을 채워 주며 자식을 키운 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손 을 쓴 마이런 얼버그의 어린 시절 모습. 청각장애를 앓았던 얼버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책을 보고 있다. 얼버그는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안아줬다.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었던 당시 여느 아버지들에 비하면 별난 일이었다”고 기억했다. [연암서가]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춘 다음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꼭 끌어 안았다. (…) 그 순간 아버지와 나는 수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나를 꼭 감싸는 아버지의 체온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내가 들은 것은 체온의 언어였다.’(72쪽)

 아니, 이것은 안 들려서 더 잘 보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수화로 ‘북’을 말했다. 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북채를 쥐고 천천히 허공의 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 손이 조금씩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 아버지의 손과 몸과 표정의 소리가 들렸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나는 귀를 막았다. (…) ‘아빠의 언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200∼201쪽)

 또한 말과 수화와 문자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수화는 눈에 보였다. 그리고 문자는 이것들을 객관화했다. “수화는 손의 모양과 위치, 얼굴 표정과 몸짓이 동시에 살아 있는 시각적인 언어였다. 그것은 나에게 가장 아름답고도 풍부한 표현을 갖춘 몸의 언어였다. (…) 인쇄된 단어들은 달랐다. (…) 모든 단어가 하나의 음표처럼 느껴졌으며 한 단어의 소리와, 여러 단어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나는 매혹되고 말았다.”(144∼145쪽)

 그리고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일찌감치 어른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다. 세상과 대화할 수 없고,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고 무시돼 버린 아버지를 위해 징검다리 노릇을 한 아들의 이야기다. 그는 천둥소리·파도소리 등 아버지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눈에 보이는 수화로 옮겨 설명하며, 아버지의 세계를 확장해줬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어린이·청소년과 어른을 잇는 아동문학가가 됐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 이야기는 늘 감동적이다. 그것이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으로 발전시킬 줄 아는 저자에 손에서 진솔하고도 짜임새 있게 쓰였을 때는 더더욱. 이 세상 모든 들리는 이와 들리지 않는 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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