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공청회 난장판 … 농민 20명 단상 점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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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부가 주최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첫 공청회가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한·중 FTA 협상에 반대하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있다. 농민단체는 “중국과의 FTA는 피해수준을 예측할 수 없는 농업 말살협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4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오전 10시 외교통상부 최석영 FTA 교섭대표가 개회사를 읽자 20여 명의 농민이 반대구호를 외치며 단상으로 뛰어들었다. 농민들은 순식간에 공청회 현수막을 걷어내고 단상 앞을 점거했다.

그러곤 ‘한·중 FTA 반대’ 구호가 적힌 빨간 띠를 머리에 동여맸다. 주최 측인 외교부는 한·중 FTA 경과를 발표하며 일정을 진행하려 했지만 농민들은 야유를 보내며 행사를 방해했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의 몸싸움도 벌어졌다. 결국 주제발표·토론 등 공청회의 오전 일정이 취소됐다.

단상 점거에 나선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이성 정책부회장은 “중국과의 FTA는 그 피해 수준을 예측할 수 없는 농업 말살협상”이라며 “농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FTA 논의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공청회는 경찰이 투입된 끝에 오후 2시가 돼서야 속개됐다.

 한·중 FTA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가 첫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찬성론자들은 “유럽연합(EU)·미국에 이어 중국과 FTA를 맺으면 세계 3대 경제권과 FTA를 맺은 유일한 나라로서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농민·중소기업 등 피해를 예상하는 쪽에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선 한·중 FTA에 따른 전체적인 경제효과는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영귀 부연구위원은 “중국과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하더라도 발효 뒤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28%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발표했다.

2004년 기준 전 세계 생산과 소비 교역 자료를 바탕으로 ‘농산물 등 민감성 품목을 뺀 한·중 FTA’ 효과를 분석한 결과다. 발효 후 5년간 실질 GDP 증가율은 0.95%가 될 것으로 봤다. 미국이나 EU 등과의 FTA처럼 개방 수위를 높이면 발효 10년 뒤 GDP 증가율은 3.04%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농업 부문에서는 다른 FTA보다 개방 제외 품목이 많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의 농업생산(43조원)은 중국(1068조원)의 5% 수준이고, 2010년엔 26억7000만 달러의 대중국 농산물 무역적자를 냈을 정도로 양국 간 불균형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어명근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주요 농산물 도매가격이 중국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농업 부문 관세를 철폐하면 광범위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어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0~2011년 평균 가격으로 한국 시금치는 중국의 8배, 참깨는 7배 비싸다. 또 대파와 당근은 6배, 가지·오이·배 등은 5배 이상 가격차가 난다. 그는 “협정 적용 제외 품목을 확대하고 긴급수입제한조치 규정을 두는 등 낮은 수준의 FTA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한·중 FTA=2004년 9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경제장관회의에서 양국이 민간 공동연구를 하기로 합의한 뒤 논의가 시작됐다. 2008년엔 FTA 추진을 검토한다는 내용의 양국 정상 간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하지만 농업과 일부 제조업 분야에 대한 피해가 예상돼 아직 협상 개시 선언을 못 하고 있다. 협상 개시를 위해서는 공청회, FTA 실무추진회의, FTA 추진위원회 심의, 대외경제장관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회 보고 절차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제발표·토론 등 일정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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