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러'-보이지 않는 폭력에 관한 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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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육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치, 종교, 지식 등 여러 종류의 폭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이고 나은 세계에 대한 꿈,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다." 〈레슬러〉감독 부다뎁 다스굽타의 말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레슬러는 이러한 사회적 폭력과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편견에 대한 우화다. 너무나 한적하고 평화로와 보이는 시골마을에도 숨어있는 편견은 존재하고, 이것으로 상처 입는 상대적인 소수의 아픔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우리가 쉽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평범한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이 어떻게 폭력으로 표출되는지를 이야기한다.

한적한 시골마을, 철도 건널목의 역무원으로 일하는 발라림과 니마이는 레슬링을 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발라림이 젊고 아름다운 우타라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종교적 이유로 불쌍한 노인과 고아를 돌보며 사는 선량한 목사를 죽이려 하고, 우타라는 두 남자에게 목사를 구하러 가달라고 애원하지만 질투와 시기로 눈먼 그들은 그녀를 외면한다. 오히려 일상적 편견으로 무시당하는 난쟁이만이 그녀를 돕는다.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레슬러〉는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단순한 우화의 형식을 취한다.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와 구성이 오히려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가면을 쓴 민속악단은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코러스처럼 막간 서술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결국 다스굽타 감독은 구원의 메시지로서 폭력과 증오, 질투와 욕망의 반대편에 순수한 영혼을 지닌 우타라, 선량한 목사, 그리고 삶의 질곡들을 구성진 노랫가락과 춤으로 풀어내는 가면극단으로 희망을 놓아둔다. 또한 난쟁이의 입을 빌어 이 세상이 착한 사람들로 넘쳐나길 바라는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다뎁 다스굽타 감독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시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 〈귀환〉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 〈타이거맨〉(1989)
,〈그들의 이야기〉(1992)
,〈날개들의 쉼터〉(1993)
,〈붉은 문〉(1996)
등의 작품이 있다. 캘커타 뉴웨이브를 이끈 인도의 대표적 감독 중 한 사람. 〈레슬러〉로 올해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Joins 엔터테인먼트 섹션 참조 (http://enzon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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