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주미 대사 후임은 제대로 뽑아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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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호 02면

한덕수 주미 대사 교체는 아무리 뜯어봐도 이상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교체 요인이 생겨도 때를 늦추다 실기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취임 초엔 금융통화위원장 같은 중요한 자리를 1년 이상 비워뒀고 최근에도 특임장관 임명을 석 달씩 미뤘다. 그런데 이번 주미 대사 교체는 전혀 다르다.

이번 주 있을 공관장회의 참석차 입국한 한덕수 대사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면담한 뒤 돌연 사표를 냈다. 대통령에겐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주요국 대사를 바꿀 권한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총리까지 지낸 주미 대사를 무역협회 회장으로 임명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해 필요하다’는 애매한 설명만으론 부족하다. 앞으로 남은 이 대통령의 임기 1년간 국정 안정과 대미 외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후임 대사에 이 대통령이 의중에 둔 인사를 임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억측마저 나온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후임 대사 인선이다. 외교가에선 이미 하마평이 떠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위 위원장, 김숙 유엔 대사가 후보감으로 거론된다. 하마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 후임 대사엔 어떤 사람이 임명돼야 하는지 숙고하는 것이다. 후임 대사는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과 신임장 제정 같은 절차를 감안하면 아무리 빨리 미국이 협조해줘도 4월께에야 공식 업무에 들어간다. 업무 파악에도 시간이 걸린다. 외교통상부의 어느 대사급 인사는 “뭘 진짜 시작하려면 6개월은 걸린다”고 말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4강 대사를 모두 교체했던 관례를 감안하면 후임 대사가 책임감 있게 일할 시간은 더욱 짧아질 수 있다.

그런 사이에 한·미 외교 현안은 적지 않다. 3월 하순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 정상회의는 북핵 문제를 생각할 때 비중이 큰 행사다. 이 행사를 주창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우리 외교부가 미국의 백악관·국무부와 직접 실무협의를 하겠지만 외교 현장을 지휘하는 주미 대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공공외교를 펼치는 것은 후임 대사가 부임하자마자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6자회담 재개, 북·미 관계 같은 민감한 현안도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11월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다. 후임 대사는 선거 과정에서 표출되는 민심의 속내, 선거 전후에 바뀔 미 정가의 대외정책 전환 같은 것을 정확히 짚어내고 우리 국익을 구현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적 경륜 못지않게 외교적 역량이 중요하다. 정치적 배려는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후임 대사 인선을 둘러싸고 ‘보은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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