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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건물 잡자"…'LG 랜드마크 전략' 효과 톡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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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5일 LG전자 AE사업본부 시스템에어컨사업부의 미주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2013년 말 완공되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산타로사 빌딩. 21층짜리 건물 3개 동으로 구성된 이 빌딩은 칠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복합단지다. 이미 칠레 1위 통신사와 호텔이 입주 계약을 마쳤다. 그런 건물에 LG전자의 에어컨이 설치된다. 사업 규모는 700만 달러(약 78억원). 일본 기업보다 20년가량 늦게 글로벌 시장에 뛰어든 한국 기업이 종주국인 일본을 제치고 사업을 따낸 것이다.

 “처음엔 유럽을 노렸어요. 그러다 1년 만에 남미로 전환했죠. 일본 기업이 유럽에 집중하느라 남미에 힘을 쏟질 못하더라고요.”

 AE(에어컨·에너지) 사업본부 김상훈(45) 미주팀장은 LG전자가 남미 시장에서 선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일본이 유럽에 집중한 것도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체형 방식으로 상업용 에어컨 시장을 주름잡던 미국 캐리어에 맞서 멀티형 에어컨을 내세운 일본 기업은 상대적으로 캐리어의 영향력이 약한 유럽에 집중한 것이다. 일본 기업과 마찬가지로 멀티형 기술을 내세운 LG전자 측은 기술적 차이를 부각해 미국 기업과 싸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김 팀장은 “세상에 블루오션은 없다. 하지만 경쟁자를 잘 선택하는 것만으로 상대적인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미 시장이 만만한 건 아니었다. 일체형 에어컨에 익숙한 건설사들은 멀티형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멀티형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이 거의 없는 것도 문제였다. 얼마나 뛰어난 기술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믿질 않았다.

 LG전자는 랜드마크 건물에 집중했다. 랜드마크 건물을 짓는 대형 건설사와 거래를 트면 다른 큰 프로젝트를 따내기 수월하다는 걸 고려했다. 전략은 먹혔다. 2009년 칠레 최고층 건물 티타니움 빌딩 프로젝트를 따냈다. 시공사였던 티타니움 건설사는 다음 해 산타로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LG전자에 먼저 사업 제안을 해왔다.

 브라질에서도 랜드마크 전략을 썼다. 2010년 상파울루의 타워팰리스로 불리는 ‘시다지 자르딘’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당시 브라질 법인에서 일했던 이수광(39) 차장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건설 특수가 예상되는 만큼 올해 랜드마크 전략의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선택과 집중을 해도 후발주자로서의 열세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2009년 티타니움 프로젝트 당시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일본의 다이킨은 “건물 중 일부를 사겠다”는 파격적인 안을 내놓았다. LG전자 측도 현지 법인 이주안을 내놓았지만 다이킨의 분양안에 비교할 게 아니었다.

 그때 LG전자가 꺼낸 카드는 ‘고객 감동’. 돈이 없어도 얻을 수 있는 마음을 얻기로 한 것이다. 현지 직원을 총동원해 티타니움 아브라함 세네만 회장의 중국 출장 일정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기간 방한을 제안했다. 최첨단 공장을 보여주려는 취지였다. 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국의 전통건축 기술과 서울의 마천루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삼청각을 식사 장소로 잡는가 하면, 부인의 선물을 살 때는 가격 할인까지 받을 수 있게 배려했다. 김 팀장은 “남미에서의 성공 전략으로 올해는 중동·아프리카·러시아 지역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상업용에어컨 한 대의 실외기에 한두 대의 에어컨이 연결된 가정용 에어컨과 달리 여러 대의 실내기가 달린 방식의 에어컨. 주로 건물에 쓰인다. 원격 조정 기능, 정밀 자동 제어 기능 같은 정보기술(IT)과 접목될 뿐 아니라 천장과 배관 공사 등 복잡한 작업과도 연관돼 최첨단 기술이 요구된다. 상업용 에어컨은 실내기와 실외기가 붙어 있는 일체형과 실외기가 각각의 공간에 설치된 멀티형으로 나뉜다. 일체형은 주로 미국 기업이, 멀티형은 한구과 일본 기업이 채택하고 있다. 세계 상업용 에어컨 시장의 70%가량을 미국 캐리어·일본 다이킨 등 상위 4개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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