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업계서 우뚝선 ‘남양알로에’집 큰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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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처방도 대부분 식물

얼마 전 방영된 TV 드라마 허준. 전 국민들을 TV앞으로 불러모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가난한 민초들이 질병으로 찾아와 고통을 호소하면 그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을 달여 먹거나 몸에 바르라고 처방한다. 비록 드라마지만 허준의 처방을 따르면 질병은 씻은 듯이 낫는다. 심지어 상당히 진행된 반위(암) 조차도…. 식물 속에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식물들 속에 함유된 각종 성분들이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인류의 건강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벤처기업 유니젠 이병훈 사장(39)은 식물 성분을 분석 추출하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걸었다. 이러한 결심은 그가 알로에라는 식물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비롯된 것. 그의 부친은 알로에로 유명한 남양알로에의 창업자. 알로에는 열대성 식물로 우리 나라에서 전혀 재배되지 않던 식물이었다. 따라서 남양알로에는 이를 전량 수입해 가공 판매했다. 그러다 보니 품질 좋은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이를 눈여겨 지켜보던 李사장은 미국에 알로에를 생산, 가공할 수 있는 현지공장을 설립, 직접 경영에 나선다.

“그때가 1988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죠. 아직 학업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니까 집안에서는 펄쩍 뛰며 반대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공부보다 이 일을 훨씬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 그는 알로에를 재배하면서 그 성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끈적끈적한데다 맛도 특이한 이 식물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사장은 알로에의 성분들을 분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89년부터 매년 1백만달러 이상을 이 분야에 투자했다. 알로에의 성분이 서서히 그의 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95년에는 알로에에서 항암 보조치료제로 사용되는 순수물질을 분리, 정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감동적이었죠. 제가 알로에 사업에 입문할 당시인 88년까지만 해도 알로에는 단지 껍질을 벗겨 즙을 짜 이를 포장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가공 판매됐습니다. 남양알로에만 해도 회를 뜨는 일식집 주방장을 불러 알로에 껍질 벗기는 법을 배울 정도로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했죠. 그런 단계에서 출발, 10년도 안돼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1백% 순수 물질을 추출해 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李사장은 아예 미국에 식물에서 천연물질을 추출하는 회사를 설립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회사에서 분리해 낸 성분은 1천여 종의 식물로부터 4만여 종에 이른다. 이렇게 특화된 식물성분 데이터는 세계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李사장은 미국뿐 아니라 남양알로에 내에도 자신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96년부터 생명과학사업부를 두고 식물성분 추출기술을 꾸준히 배양해 왔다. 생명과학사업부는 식물에서 신소재를 탐색 추출해 낼 뿐 아니라 이를 유전체에 비교까지 하는 ‘파이토로직스’란 기술을 보유, 지난 3월 별도법인 유니젠으로 분사했다. 유니젠은 최근 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두 대밖에 없는 고가 연구장비를 도입했다. 이 기계는 오는 2002년까지 유니젠 이외에 세계 어디서도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유니젠 측이 들여온 것이다. 이 기계를 독점적으로 사용, 유니젠 측은 1년에 2천 종의 식물로부터 8만∼10만 종의 성분을 추출해 낼 계획이다.

욕심에 치우치지 않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이병훈 사장은 유니젠을 5년 안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천연물 분리정제 업체로 성장시키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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