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바람 난 일산 아줌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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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아람누리 소설창작교실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이상형·도지현·박인애(왼쪽부터)씨의 모습. 이들은 3월 봄학기 개강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글을 쓸 동안 조금 고단하고 많이 행복했다. 어쩌면 서투른 글을 쓰기 위해 서투른 아내, 서투른 엄마가 되려는 건 아닐까? 그럴수는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계속 좋은 주부이고 싶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악착 같은 집착을 느낀다.” 1970년, 소설 『나목』으로 등단할 당시 박완서 나이는 마흔이었다. 그의 첫 당선 소감에는 작가로서의 포부뿐만 아니라 주부로서의 책임도 함께 느껴진다. 지난 6일, ‘제2의 박완서’를 꿈꾸는 주부들을 만났다. “올해의 목표는 등단”이라며 당당하게 외치는 그들, 일산의 ‘글쟁이’ 주부들이다.

글 쓰기, 가장 경제적인 욕구 해소 창구

 도지현(41), 이상형(44), 박인애(43)씨는 고양아람누리 소설창작교실에서 인연을 맺었다. 모두 전업주부 경력 10년 차 이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잠시, 보통의 주부가 그러하듯 육아와 동시에 개인의 삶은 점차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딱 10년이 흐르니 자신을 표현하고픈 욕구가 치솟았단다.

 이들은 소설가 이순원의 지도 아래 매주 한번씩 모여 작품 합평회를 한다.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면 등에서 식은땀이 솟아난다. “남들이 보면서 ‘나도 쓰겠다’라고 생각할 수준이면 절대 감동을 주지 못해요” “조금 더 사물의 근원으로 파헤쳐 들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카로운 지적들이 오가는 시간을 두고 이상형씨는 마치 ‘뺨 맞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이씨는 오기를 가지고 자신을 계속 시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성과를 냈다. ‘제1회 현대백화점 문예공모전’ 수필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의 작품이 월간 ‘한국산문’에 실리면서 수필가 등단의 영광도 안았다. 수업을 들은 지 불과 2개월 만의 일이다.

 이씨의 성과에 다른 수강생들도 자극을 받았다. 대학 시절 문예창작을 전공했던 도지현씨와 박인애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도씨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이미 다 배워서 알고 있는 내용인데 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냐”며 못마땅해 했지만 그는 이곳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기술을 배웠다고 말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글 안에 녹여내는 방법이다. 문장력이 풍부했던 도씨는 굳이 글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런데 초보 작가들과 수업하면서 진짜 감동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녹여낼 때 오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서툴지만 진지하게 자신을 이야기하는 주부들에게서 글쓰는 데 필요한 용기가 무언지 배웠다”는 도씨는 “나 역시 하루 빨리 껍질을 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수강생 전원 소설가 등단’이다. 상호간의 교감을 통해 공동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박씨가 소설 강좌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즐거움 역시 ‘북돋움’이다. “내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또 그것을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생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박씨는 “비평 받고 성장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그 모습이 마치 나의 거울과 같아 용기를 주지 않을 수 없다”며 흐뭇하게 웃는다.

<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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