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출신 '짱돌'10대, 카페 CEO 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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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카페 ‘두드림’의 CEO로 새 꿈을 시작하는 노성태·이승헌·이창현·강성훈군(왼쪽부터). 늘 어두웠던 이들의 얼굴은 요즘 몰라보게 밝아졌다. [전주=장대석 기자]

별명이 ‘짱돌’인 노성태(18)군은 부모 얼굴을 모른다. 태어나면서 곧바로 서울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는 2년 전 고등학교마저 그만뒀다. 1학년 때 이웃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인 탓에 학교로부터 자퇴 압력을 받아서다. 학교를 떠나면서 보금자리였던 보육원마저 뛰쳐나왔다.

 그 뒤 가출 청소년 보호시설인 쉼터를 떠돌다 연고도 없는 전주까지 내려왔다. 분식점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월급을 떼인 채 쫓겨나기도 했다. 너무 힘들 땐 술을 마시고는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느냐”고 울부짖으며 주먹에 피가 철철 흐르도록 벽을 때려댔다.

 하지만 노군의 얼굴이 요즘 환하게 밝아졌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꿈꿀 수 있는 일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의 1층에 자리한 청소년 카페 ‘두드림(Do Dream)’이 그곳이다. 99㎡ 규모에 커피·주스 등을 팔게 될 이 카페는 13일 문을 연다.

 노군은 이 카페에서 서빙을 담당하는 종업원이자 경영을 책임지는 공동 CEO(최고경영자)로 ‘1인 2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주변에 버스정류장과 고시학원 등이 있어 목이 좋다”며 “가게를 잘 키우겠다는 인생의 꿈이 생겨 아침마다 기대와 설렘 속에 눈을 뜬다”고 했다.

 이 카페의 종업원 겸 CEO는 노군을 포함해 모두 11명이다. 다들 불우한 환경 속에 방황하던 청소년들이다. 태어나자 마자 보육시설에 맡겨지고,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진 이들이다.

 이들을 카페 CEO로 만드는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 시작됐다. 전북청소년상담지원센터가 주축이 됐고 종교단체와 기업이 힘을 보탰다. 센터의 윤수남 사무국장은 “가출청소년들에게 학교 복귀나 취업 훈련은 별 효과가 없다”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기를 고민해 보면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에 카페 창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건물 임대료와 리모델링 비용 5000여만원은 원불교와 전북은행이 지원했다.

 카페를 맡을 청소년은 전주 시내 쉼터 3곳의 아이들 30여 명 중 신청을 받아 뽑았다. 그러곤 1월 초부터 전문가들을 초빙해 재료 반죽하기, 크림 만들기, 커피 내리기 등을 가르쳤다. 고객에게 인사하는 법, 기분 좋게 말하는 요령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교육 내용 탓에 처음엔 “이딴 짓 하러 온 거 아니다. 왜 이런 걸 해야 하느냐”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또 협력작업이 힘겨워 서로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차츰 교육에 적응하고, 카페를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태도가 달라졌다. 늦잠자기 일쑤였던 이들이 오전 6~7시면 일어나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입에 늘 달고 다니던 욕도 사라졌다. 운동복 대신 정장을 차려 입는다.

 최근엔 서로 머리를 맞대 경영전략도 짜냈다.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 ▶주 메뉴는 커피·주스·쿠키 ▶커피값은 청소년 1000원, 어른 2000원 등이다. 윤 국장은 “3~4개월이면 외부 지원 없이 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며 “그 전까지는 임금과 운영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 오픈이 다가오면서 이들의 꿈도 자라고 있다. ‘정식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겠다’ ‘영어를 배워 글로벌 CEO가 되고 싶다’ 등등 과거엔 꾸지 못한 꿈들이다. 이창현(17)군은 “카페를 성공적으로 경영해 2, 3호점을 열고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겠다”며 “나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돕는 사회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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