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불발로 끝난 '우정의 금'

중앙일보

입력

"에스더 김, 미안해요."

올림픽을 따스하게 비춰준 봄날의 동화는 가을의 전설로 남지 못했다.

지난 5월 에스더 김(20)의 양보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미국 태권도 대표 케이 포(18)가 27일 열린 여자 49㎏급 1회전에서 탈락했다.

우승 후보로 꼽혀온 포는 복병 한네 포울센(덴마크)과 접전 끝에 3 - 4로 역전패, 분루를 삼켰다.

경기 중반까진 포가 유리했다. 포는 빠른 발과 앞발차기로 주도권을 쥐며 3회전 초반까지 3 - 1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포울센이 맞받아차기를 적중시키며 막판 내리 4득점, 승부를 뒤집었다. 포울센의 감점 1점을 합해도 3 - 4, 승부는 되돌릴 수 없었다.

관중석에서 일어서서 목청껏 소리지르며 열렬히 응원하던 에스더 김도 털썩 주저앉았다.

에스더 김은 "포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 모두는 그를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

둘은 13년 지기다. 에스더의 아버지 김진원씨가 운영하는 오하이오 페인스빌 태권도장에서 같이 운동하며 우정을 키워왔다. 에스더 김은 핀급, 포는 플라이급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체급이 합쳐지면서 둘의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올림픽 미국 태권도 대표선발전에서 에스더 김이 먼저 결승에 올랐다.

케이 포도 뒤이어 결승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전에서 다친 무릎 때문에 더 이상 경기하기가 힘들었다.

에스더 김의 기권승. 그러나 에스더 김은 "실력이 앞선 포가 올림픽에 나가야 한다" 며 출전권을 양보, 전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포는 이날 패배 후 고개를 들지 못하고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 나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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