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홍콩의 포청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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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사업하는 외국인들이 인정하는 게 하나 있다. 홍콩 공무원들이 유능하고 깨끗하다는 점이다.

규정대로 하지 않았다간 틀림없이 낭패를 당하고 뇌물이 잘 통하지 않는 사회가 홍콩이다. 공무원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주는 대신 부패감시 시스템은 엄청나게 철저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뇌물이 통하지 않는 전통은 공교롭게도 오랜 식민지 역사 때문에 생겨났다. 총독부 체제에서 정치인은 총독 하나면 족하다. 나머지는 모두 유능한 공무원이면 된다. 그래야 식민 백성을 잡음없이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복귀한 뒤 홍콩 공무원 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홍콩 공무원 사회엔 부패가 거의 없다. 중국 쪽에서는 이렇게 깐깐한 홍콩 공무원들을 친영반중(親英反中) 적인 존재들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홍콩에서 사업하기 좋은 이유는 이런 공무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홍콩 공무원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홍콩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정무사(政務司) 앤슨 찬(陳方安生.60.여) 사장(司長) 이 있다.

마지막 홍콩 총독을 지낸 영국의 크리스 패튼은 "앤슨은 내가 함께 일한 사람 중 가장 뛰어난 관리" 라고 회고했다. 후배 공무원들도 "일에는 서릿발 같지만 일단 사무실을 벗어나면 봄바람 같은 분" 이라고 평가한다.

앤슨이 사랑받는 이유는 철저한 공복의식 때문이다. 구민 이익에 어긋나는 일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중국 정부 입장을 살펴야 하는 둥젠화(董建華) 행정장관과 앤슨이 여러 차례 충돌한 것도 '구민 최우선' 이란 앤슨의 칼날 같은 원칙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앤슨을 곱게 볼 리 만무하다. 심지어 '친영반중파' 로 간주하는 분위기도 있다. 앤슨과 중국 고위층의 면담도 사실상 제한돼 왔다.

그러나 결국 중국 정부가 먼저 앤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첸치천(錢其琛) 외교담당 부총리는 25일 급히 베이징(北京) 으로 앤슨을 불러 董장관을 지원해 줄 것을 당부했다.

董에 대한 공무원의 충성심이 위기수준을 넘어 파국단계여서 앤슨으로 상징되는 홍콩 공무원들의 지지 없이는 홍콩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침례대학은 공무원 70%가 董을 불신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상태로는 홍콩 경영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마음에 내키진 않지만 중국이 앤슨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가운데 앤슨 같은 버팀목이 몇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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