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적자금인가]

중앙일보

입력

"불이 나서 애써 불을 끄고 나니까 나중에야 물을 너무 많이 썼느니, 불끄면서 화단을 망쳤느니 하고 나무라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는 정부의 예측 잘못과 비효율적인 관리로 당초 국민에게 약속한 것과 달리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게 됐다는 비판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위기극복 과정에서 공적자금은 우리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충분히 했다.

지난 7월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은 은행 23개를 포함해 모두 1천6백65개다.

1997년말 금융기관 개수가 은행 33개 등 2천1백2개임을 생각하면 2년반 동안 무려 4백80개의 금융기관이 사라진 셈이다.

수백개의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상황이었음에도 고객들이 은행.종금 등에 맡겨놓은 돈을 날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공적자금' 이 힘겹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한 금융기관을 대신해 고객 예금을 지급해 주는 돈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얘기다.

공적자금(Public Fund)이란 이처럼 예금자 보호를 위해 예금 대지급을 하거나 부실채권 매입 등의 방법으로 금융부실을 청소하기 위해 사용하는 돈이다.

이제까지 국회 승인을 받아 조성한 공적자금은 모두 64조원이다.

부실채권정리기금(자산관리공사)과 예금보험기금(예금보험공사)이 정부가 원리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해 조성했다.

공적자금은 정부 재정에서 집행된 돈은 아니지만 정부가 지급을 보증했기 때문에 회수가 제대로 안되면 최종 손실분은 결국 재정에서 메워야 한다.

공적자금의 이자도 재정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공적자금 조성 자체는 곧바로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연결된다.

64조원 가운데 지난 8월말까지 25조3천억원이 부실채권 매각 등을 통해 회수됐으며, 이 중 18조6천억원은 다시 부실처리에 투입됐다.

이밖에 공공자금이란 이름으로 27조원 규모의 별도자금이 구조조정에 사용됐다.

공공자금은 국회 동의를 받아 조성한 자금(64조원+회수분)외의 다른 자금을 총칭하는 것으로 차관자금.정부 보유주식.예금보험공사 차입금 등 다양하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외환위기 후 지난달 말까지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한 공적.공공자금은 모두 1백9조6천억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잠정치)이 4백83조8천억원임을 고려할 때 GDP의 23%에 달하는 돈다발이 부실 청소에 투입된 셈이다.

공적자금이 바닥나 정부가 40조원을 추가로 조성하기로 결정한 만큼 부실청소를 위해 투입하는 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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