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TV, 알고 삽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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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호 31면

컬러TV 방송을 막 시작했을 때니 1980년 12월 말일 것이다. 하루는 함께 놀던 초등학교 친구가 “성공했어. 우리 집은 컬러TV 산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망가뜨린 걸 엄마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채널 손잡이를 돌려 TV를 안 나오게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친구의 성공을 부러워했다. 몇몇은 비슷한 시도를 하다 들켜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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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일이 떠오른 건 반값TV 열풍 때문이다. 대부분 가정에서 TV는 여가생활의 중심이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40만~50만원에 좋은 TV를 살 수 있다니 소비자로서는 반색할 일이다. 그래선지 유통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반값 TV를 내놓는다.

경제가 어려울 때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하지만 싼 것이 다는 아니다. 품질도 좋아야 한다. 반값 TV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반응도 꽤 되지만 ‘싼값의 TV를 제값 주고 사는 것일 뿐’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확한 성능을 궁금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논란의 핵심은 패널(액정화면ㆍLCD)이다.

대표적 패널업체인 LG디스플레이는 자사의 패널로 반값 TV를 만들어 파는 유통업체들에 최근 공문을 보냈다. 요지는 ‘우리 패널을 쓴다는 것을 협의 없이 광고하지 마라. B급 패널을 쓰면서 최상급인 것처럼 하지 마라’는 내용이다. 패널은 품질검사 후 A·B·C급 등으로 나뉘는데 통상 B급은 중소업체 TV에, C급은 노래방용 모니터 등에 쓰인다. 반값 TV 판매업체도 할 말은 있다.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A·B급 패널의 화질 차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공급자가 B급 대신 A1급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사실 우리도 정확한 차이를 모른다. 파렴치범처럼 취급받아 억울하지만 그나마 패널 공급이 끊길까 봐 불만을 표시하지 못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값싸고 품질이 좋으면 어느 회사 부품이든 그만이다. 값이 싸면 품질·기능이 좀 처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다만 ‘속았다’ ‘모르고 잘못 샀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장기적으로 판매업체에도 손해다. 값은 이만큼 싸지만 패널은 이렇고 기능은 이 정도라고 분명히 밝히는 게 좋다. ‘ 패널 기준을 제외한 다른 사양이나 기능은 다 설명돼 있다’지만 좀 더 분명히 눈에 띄게 알려주면 좋겠다. 35만9000원에 32인치 디지털TV를 파는 한 인터넷마켓 게시판에는 이달 초 이런 질문이 올랐다. ‘그냥 고화질(HD) 패널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어느 회사 제품이죠. USB로 영화 보기 지원은 되나요’(아이디 k***). 답변은 ‘LG 패널이며 USB로 영화 보는 것은 불가합니다’다. 제품 설명이 제대로 안 되는 장면이다.

TV시장의 강자인 삼성전자ㆍLG전자는 어떤가. 반값 TV에는 ‘거품 제거’라는 광고 문구가 따른다. 양사가 그간 비싼 제품만 내놓은 것은 아닌지, 진짜 거품이 있던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미국 유통업체 베스트바이에서 삼성 32인치 LCD HDTV(CLASS)는 299.99달러(33만5000원)다. 14% 할인가격이고 사양에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에서 이 회사 32인치 LCD HDTV는 50만~60만원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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