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설, 연극으로 소개하니 신선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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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선보인 마르탱 파주의 소설 『아마도 사랑 이야기』의 한 장면. 왼쪽부터 해설을 맡은 뮤지컬 배우 강인영과 주인공역의 연극 배우 윤길. [강정현 기자]

세상에는 이런 남자도 있다. 이름은 비르질. 31세. 직업은 카피라이터. 파리에 거주하는 솔로남. 그는 변화를 싫어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즐길 뿐. 그래서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도 한다. 이를테면 직장 상사에게 승진을 통보 받고선 “절대로 승진할 수 없으며 연봉을 올릴 필요도 없다”며 버틴다. 승진은 곧 책임이 늘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반복되는 일상도 급변할 테니까.

마르탱 파주

 이 요상한 남자는 실은 소설 속 인물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37)의 장편 『아마도 사랑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다. 저 엉뚱한 남자 주인공을 3일 오후 연극 무대에서 만났다. 이 소설을 펴낸 열림원이 서울 미근동 KT&G 유니브에서 펼친 ‘북 쇼케이스’다. 책 내용이 연극으로 압축돼 소개됐다. 출판기념회의 진화된 형태랄까.

 소설은 마르탱 파주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과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로 짜였다. 소설 전반부를 30분 분량으로 압축한 연극은 이 소설의 재기 발랄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주인공 비르질의 행동과 말투를 연극으로 재구성하자 텍스트에 생명을 입힌 듯 생생한 이야기로 재탄생됐다. 예컨대 이 소설의 매혹적인 도입부는 이렇게 연극으로 전환됐다. 연극 배우 윤길이 주인공 비르질을, 뮤지컬 배우 강인영이 해설을 맡았다.

 ▶자동응답기 메시지(클라라의 목소리):“나야 클라라. 미안해. 우리 그만 헤어져, 당신을 떠나기로 했어.”

 ▶비르질:(목소리를 높이면서):“클라라? 클라라가 누구지? 나는 분명히 한 여자와 사귀었는데, 문제는 그 여자와 사귄 기억이 없다는 거야!”

 ▶해설자:(객석을 향해 걸어나오면서)“누군가에게 차였다는 슬픔, 이 사태의 비정상성. 그의 머리는 지금 과열 상태!”

 비르질은 어느 날 자동응답기로 이별을 통보 받는다. 문제는 이별을 통보한 여성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에 없다는 것. 비르질의 기억에서 사라진 여성, 클라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런데 대체 클라라는 누구인가. 연극에선 해설자가 이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사태의 비정상성.” 이어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는 클라라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연극은 이 대목에서 막을 내렸다. 나머지는 소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비르질의 ‘한 때’ 연인 클라라를 찾아가는 여정이 소설의 큰 줄기다. 비르질은 기억을 못 하는데, 그의 친구들은 그의 이별을 위로하려 든다. 정신 감정에 이어 CT 촬영까지 해봤지만 그의 뇌는 지극히 정상적.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비르질은 그저 평범한 삶을 꿈꿨다. 서커스 단원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불안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그의 일상에 개입됐다. 클라라에 대한 기억 실종 사건!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르질은 자신의 인생관과 사랑관을 재점검하기에 이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마르탱 파주는 “주인공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적인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가는 건 결국 스스로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비르질은 마침내 클라라를 찾아낼까. 아마도? 아마도! 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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