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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면 어떻고 헌누리면 어떠랴 … 국민만 행복해진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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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새누리라니! ‘새(鳥)들의 세상’을 만들겠다고요? 온갖 잡새들 모여드는 철새 도래지를 만들겠다는 얘기 아니냐고요.”

 “뭘 그렇게 열 내고 그러세요. 잘해 보겠다는데….”

 “그 동네엔 그렇게 조두(鳥頭)들만 모여 있나 보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따위를 당명으로 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국민 공모까지 해서 골랐다는 게 그 모양이니…정말 한심해요.”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거듭 태어난 날 밤, 택시 운전사는 귀가하는 애꿎은 손님을 붙들고 연신 혀를 찼다.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에서는 하루 종일 난리가 났다. 손가락 가진 사람들은 다들 한 줄씩 올리는 분위기였다. 참신하고 좋다는 반응보다 조롱 섞인 부정적 반응이 훨씬 많았다.

 동네 강아지나 유치원 이름으로 하면 딱 어울리겠다는 냉소, 어느 교회 신자가 작명한 게 틀림없다는 진지한 의심, 차라리 새누님당이 솔직하고 좋겠다는 비아냥까지 쏟아지는 말 말 말. 그중에서도 제일 많았던 건 ‘새로 또 한번 누리겠다’는 뜻 아니냐는 힐난. 열화 같은 반응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일단 흥행에는 성공했다.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 대변인은 “새로운 대한민국,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대한민국, 갈등을 넘어 국민이 화합하고 하나 되는 새 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작명 배경을 설명했다. 새로 들어온 집주인이 대대적인 개·보수를 통해 집 단장을 새로 했으니 문패를 고쳐 다는 것을 나무랄 건 아니다. 고르고 골라 붙인 문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미우니까 공연히 시비를 거는 혐의가 짙다.

중요한 건 문패가 아니다. 집이 얼마나 튼튼하게 잘 지어졌고,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사느냐다. 호박에 줄 그어도 수박 안 되고, 걸레는 빨아도 걸레일 뿐이라는 악담이 쏟아지는 것은 당명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는 한나라당에 대해 쌓인 반감과 분노의 표출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그에 따라 당의 정강과 정책이 바뀌어도 영국의 보수당은 200년째 여전히 보수당이고, 노동당은 여전히 노동당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정당사는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헤쳐 모여’의 역사다. 특정인의 집권을 위한 ‘위인설당(爲人設黨)’이다 보니 철학은 빈약하고, 정체성은 모호하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국민은 먹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알약인 소마(soma)를 제공받는다. 새누리당, 즉 신세계당의 정강·정책 제1조는 국민의 행복이다. 새누리당은 국민을 위한 ‘행복의 묘약’부터 만들어라. 새누리당이면 어떻고, 헌누리당이면 어떤가. 그것이 누구의 집권에 봉사하는 일회용 정당이 아니라 일정한 가치와 세력을 대변하는 100년 정당이 되기만 한다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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