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의 부자 탐구 <14>·끝 3대 못 가는 부 대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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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서울에 사는 50대 김모씨는 자산이 34억 원이다. 소유한 집 두 채 값이 20억원이고, 예금과 주식 등 금융자산도 12억7000만원 정도다. 골프회원권도 있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매일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골프를 즐긴다. 큰아이는 미국 대학에, 고교 2학년생 아이도 해외 유학을 고려 중이다.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가장 많이 고민하지만 스스로 부자라 여기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자산이 불어나야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7월 내놓은 ‘2011 한국 부자 연구’에 나온 대한민국 평균적 부자의 모습이다. 이들 부자 4명 중 3명은 자신을 부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5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이 있어야 부자라고 여긴다. 외국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백만장자 자산운용 컨설팅사인 SEI인베스트먼트는 영국 런던 소재의 ‘스콜피오 파트너십’에 의뢰해 지난해 7월 온라인으로 보유 자산 2000만 달러(약 210억원)가 넘는 미국 부호 100명 이상에게 향후 5년 내의 최대 관심이 무엇인지 물었다. 응답자의 74%는 재산 증식이라고 했고, 재산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는 응답도 53%였다. 부자들의 가장 큰 불안과 고민은 바로 돈이다.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더 보람되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뒷전이다. 돈이 사람을 잡아먹은 경우다.

 부자 고민의 정점은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힘든 자식을 부자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해법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들지 않은 부를 유지하기란 공부하지 않고 시험 잘 보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때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부자가 되기 힘들다’고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부자가 3대 이상 유지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100대 주식 부호 중 스스로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은 20명 정도다. 부모 도움으로 부자가 된 비율은 50세 이상 부자 중 16.6%, 49세 이하는 29.9%다. 젊은 부자일수록 부모 도움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부자로 남을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처음부터 부자로 살면 부를 유지하거나 증식시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모 덕에 부자가 된 자녀가 노후에 빈곤하게 될 가능성은 가난한 집 아이가 자수성가해 부자가 될 가능성보다 더 크다.

 부자 이야기를 끝내면서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 수퍼리치의 비밀을 알려주려고 한다. 이들에게 돈은 가장 큰 불안의 원인이다. 그래서 삶이 즐겁지 않다.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스스로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이들의 자녀는 아주 특별히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부를 증식하려 할수록 실패는 정해진 운명이다.

보통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지만, 또 쉽게 속기도 한다. 소문이나 작전의 희생양이 되기 쉽고, 대박의 희망으로 ‘선물·옵션’ 같은 투기성 투자에 쉽게 가담한다. 주변의 조언에 귀를 닫기 때문이다. 작은 손실은 아까워하며, 큰 손실에는 대범하다. 수퍼리치라는 재벌가 2, 3세의 숨겨진 인생 고충들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기 힘들기에 이들은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빈곤하다.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 수준이나 마음의 풍요로움은 가진 부에 정비례하기보다 그 반대다. 대부분의 부자가 정말 숨기는 비밀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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