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 목에 흉기 흔적, 며느리 몸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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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설 연휴 이틀 뒤인 26일 새벽 2시5분쯤 충남 당진시 합덕읍 궁리의 김모(76)씨 집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불은 30분 만에 100㎡ 규모의 32년 된 농가주택을 몽땅 태웠다.

 경찰은 불에 탄 집에서 시신 5구를 발견했다. 김씨 부부와 아들(42) 부부, 손자(9)였다. 시신은 모두 안방에 반듯이 누운 상태였다. 경찰은 시신에서 불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타살 가능성을 높게 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대부분 타살됐다’는 1차 소견을 내놓고 있다. 노부부의 목에선 흉기에 찔린 흔적이 발견됐고 손자의 목엔 전깃줄이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또 노부부와 며느리, 손자에게선 폐에 연기를 마신 흔적이 없었다. 죽은 뒤에 불이 났다는 얘기다. 반면 아들은 유일하게 연기를 마신 흔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일단 아들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 실제 경찰이 확인한 아들의 행적도 수상쩍다. 아들 부부는 충남 천안시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서 “부부가 가끔 다퉜다”고 진술했다.

 아파트 폐쇄회로TV(CCTV)에도 수상한 장면이 찍혀 있다. 부모가 사는 당진으로 향하기 직전인 25일 오후 8시쯤 자신의 아들을 안고 집에서 내려온 뒤 10여 분 후 부인을 업고 다시 계단을 내려온 것이다. 경찰은 “아들과 부인 모두 외투 등으로 덮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노부부의 적지 않은 재산(약 20억원)도 아들에게 혐의를 둔 이유다. 김씨는 마을에 논 1만9000㎡(6000평)와 밭 9900㎡(3000평), 천안 단독주택(대지 792㎡)을 갖고 있다. 아들이 살고 있던 천안의 아파트(105㎡)도 노부부 소유였다.

 하지만 재산을 노린 범죄였다면 아들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함께 숨졌다는 사실 때문에 수사도 어렵게 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재산을 노린 다른 범죄들과는 상황이 달라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제3의 인물에 의한 범행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노부부 아들 역시 살해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충남경찰청 고재권 강력계장은 “외부인에 의한 방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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