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의 좌절 … 붉은셔츠 매직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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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타이거 우즈가 29일 유러피언투어 HSBC 골프 챔피언십 마지막 날 2번 홀(파5)에서 세 번째 샷을 나무 밑에서 쳐내고 있다. 우즈는 90야드 거리의 이 샷을 그린에 올려 20m 버디를 잡았지만 이후 드라이브샷 난조로 공동 3위에 그쳤다. [아부다비 로이터=뉴시스]

바위처럼 단단했다. ‘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로버트 록(35·잉글랜드)이 붉은 셔츠의 공포를 날려버렸다. 폐위된 골프 황제의 복귀 시도는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타이거 우즈(37·미국)가 29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벌어진 유러피언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그쳤다. 우즈는 록과 함께 11언더파 공동 선두로 경기를 시작했다. 3라운드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그는 “스윙 교정이 거의 완성됐으며 압박감 속에서도 여러 가지 탄도의 샷을 칠 수 있게 됐다”면서 우승을 자신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우즈는 최종 라운드 이븐파, 최종 합계 11언더파에 그쳤다. 유러피언투어 1승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었던 록이 최종 합계 13언더파로 우승했다.

우즈를 꺾고 우승한 로버트 록. [AFP=연합뉴스]

 첫 홀 티잉 그라운드. 사막의 태양에 우즈의 강렬한 빨간색 셔츠가 도드라졌다. 우즈의 샷은 돌아왔으나 경쟁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붉은 셔츠의 공포도 돌아올 것인가가 또 다른 관심사였다. 우즈와 함께 최종 라운드 우승 경쟁을 하는 선수는 마취 없이 수술을 받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한다. 또 다른 동반자인 피터 한손(스웨덴)은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첫 티샷을 물에 빠뜨리는 등 이날 6오버파로 무너졌다.

 록은 달랐다. 우즈의 셔츠를 소 닭 보듯 했다. 최종 라운드에 우즈와 챔피언조에 배정된 뒤 “우즈와의 경기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수차례 들었는데 그는 “궁금합니까? 나도 궁금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파5인 2번 홀에서 그린을 노리고 친 우즈의 두 번째 샷이 왼쪽으로 휘어져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스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즈는 그린 끝에 공을 올려놓는 묘기를 보여줬다. 핀까지 거리는 무척 멀었다. 20m도 넘었다. 갤러리들은 “파를 하면 다행”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우즈는 이 퍼트를 우겨넣어 버렸다. 갤러리의 함성이 터졌다.

 위기 상황에서 더욱 강해지는 우즈의 매직이 드러났다. 이런 장면을 보면 동반자들은 위압감을 받는다. 붉은 셔츠의 공포가 다시 등장하는 듯했다. 그러나 록은 여전히 무표정했고 버디를 잡아냈다. 우즈는 파3인 3번 홀에서 핀 30㎝에 공을 붙여 록을 압박했다. 록은 여전히 우즈의 샷에는 아무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고 자신도 버디를 잡았다. 우즈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우즈는 4번 홀부터 2연속 보기를 했고 더 이상 쫓아가지 못했다.

 록은 마지막 홀에서 위기에 빠졌다. 티샷을 워터 해저드에 빠뜨렸다. 록의 얼굴이 벌개졌다. 하지만 록은 1벌타를 받고 드롭한 뒤 레이업에 성공, 보기로 마무리했다.

 록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 큰돈을 주는 스폰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쓸 수는 있다. 록은 왜 모자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모자를 쓰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모자를 쓰지 않은 선수가 우승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프로골퍼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모자를 썼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가 등장한 후 야구 모자를 쓰는 것이 프로골퍼의 유니폼처럼 됐다. 록은 평범하지 않고, 우즈를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미래의 황제’ 로이 매킬로이(23·북아일랜드)가 12언더파로 2위에 올랐다. 세계랭킹 1위 루크 도널드(35·잉글랜드)와 최경주는 1언더파, 공동 48위로 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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